2일 발인 후 여의도성당 장례미사
김민자·김혜수·유인촌 눈물 속 배웅
황영기 고별사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형제님의 푸근한 미소와 어진 모습을 이젠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반세기 넘게 안방을 지킨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가톨릭교회가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에 마지막 미사를 받았다. 해마다 11월 2일, 교회는 먼저 떠난 이들의 안식을 위해 특별히 기도한다.
염수정 추기경은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에서 열린 고인의 장례미사에서 “최불암 형제님이 정말 혼자가 아니라 많은 분과 함께하시는 분이셨다는 것을 새롭게 느낀다”며 “위령의 날에 장례미사를 올리게 돼 참으로 뜻깊다”고 했다. 염 추기경은 ‘수사반장’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로 이어진 고인의 삶을 하나하나 짚으며 국민 아버지이자 국민 배우로 기렸다. 소외된 이웃에게 웃음과 기쁨을 건네는 벗이었다는 회고도 이어졌다.
국민 아버지가 떠나는 날, 아침 공기는 쌀쌀했다. 오전 7시 4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비공개 발인이 엄수됐다. 고인의 손자가 영정을 들고 운구가 뒤따랐다. 지난달 30일 새벽 고인이 병원으로 옮겨질 때도 뒤를 따랐던 아내 김민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연신 눈물을 닦았다. 검은 상복 차림의 배우 김혜수가 장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빈소를 지키며 김민자를 부축했다. 39년 전 드라마로 맺은 인연을 딸의 자리로 이어 온 후배다. 방송인 김경란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고, 배우 정준호·송일국과 방송인 안현모는 묵묵히 운구 행렬을 따랐다. 배우 신현준은 운구차와 조문객 버스가 떠날 때까지 홀로 남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미사는 “주님 품 안에 잠든 최불암 프란치스코 형제”를 위한 기도로 문을 열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유인촌 전 장관, 배우 강석우, 가수 앤디 등도 자리를 함께했고, 발인을 지킨 김혜수·신현준·정준호·송일국도 성당까지 동행했다. ‘전원일기’에서 극 중 아들 용식이었던 유 전 장관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정부가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은 앞서 최 장관이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전했다.
사흘간의 빈소에도 저마다의 인연이 다녀갔다. 여의도에서 고인과 한 블록 사이에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배우 이계인은 “술도 제일 많이 마신 놈이 나”라며 끝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한 임호는 고인을 어른이자 선생님, 아버지로 기억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고인을 고교 선배이자 선친 정주영 명예회장의 친구 같은 분으로 떠올렸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28년간 서울시 홍보대사를 지낸 고인을 ‘서울의 얼굴’로 기렸다.
강론은 고인의 신앙으로 이어졌다. 염 추기경에 따르면 최불암은 매주 일요일 아침 아내를 이 성당 마당까지 데려다주며 “이미 반은 천주교 신자”라고 농담하곤 했다. 성당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던 남편은 2018년 10월 31일 염 추기경 앞에서 세례를 받았고, 같은 날 아내와 혼인갱신식도 올렸다. 당시 김혜수도 그 자리를 지켰다. 고인은 세례를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염 추기경은 세례를 앞둔 고인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연기자는 구도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염 추기경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쓰겠다던 고인의 다짐도 전했다. 고인은 병자성사를 받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실에서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불러 줄 만큼 기력이 있었지만,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염 추기경은 지난달 20일 병실을 찾아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이날 강론은 고인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비는 기도로 맺어졌다.
미사 말미에는 고인을 ‘이모부’라 부르던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2023년 몽골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도 불렀던 곡이다. 임형주는 별세 이튿날 SNS에 “몇 달 전 병문안에서의 인사가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지 몰랐다”고 적었다. 이날 노래 도중 임형주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거듭 눈물을 삼켰다.
장례위원장인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고별사에서 마지막 병문안을 떠올렸다. 그는 “끝까지 정성껏 모시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짧았지만 깊은 신뢰가 담긴 마지막 인사였다”고 회고했다. 황 회장은 평생 어린이 곁을 지켜 준 큰 어른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슬픔과 애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고별사는 고인이 걸어온 나눔의 길을 되짚었다. 고인은 미국과 유럽의 교민들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독려했고, 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의 아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2012년부터는 소년교도소 청소년들에게 연극과 뮤지컬을 가르치며 사회로 돌아갈 길을 열어 줬고, 위기 청소년을 돕는 사단법인 제로캠프 설립에도 힘을 보탰다.
황 회장은 생전 늘 “아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말하던 고인의 뜻을 되새기며 “남기신 뜻을 이어, 저희도 언제나 어린이 곁을 지키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을 향해 “최불암 후원회장님, 그동안 정말로 감사했다”는 인사도 함께 건넸다.
미사가 끝난 뒤 가족과 동료들은 성당 앞에 늘어서 영정과 운구를 배웅했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 포도가 익는 계절”(고인이 김혜수에게 보낸 문자)이라고 했던 고인의 말처럼, 그는 완연한 늦가을 그리움을 남기고 떠났다. 운구 행렬은 초록우산 본부를 거쳐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향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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