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독산동 빌라촌 가보니
‘빌라왕’ 사기 사건으로 전세 기피 심화
“빌라 전세에서 월세, 아파트 전세로 이동”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희망이 없어요. 전·월세 문의는 물론, 거래 자체가 없어요. 최근 7개월간 매매랑 전·월세 통틀어 성사시킨 계약이 고작 2건이에요. 빌라 시장은 ‘휴장 상태’나 다름없어요.”
지난 5일 서울 금천구에서 만난 60대 김모 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9년간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해온 그는 “중개사무소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한 달에 한건도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매월 120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벅차다”며 “그동안 9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최소한 밥벌이는 했는데 이 정도로 최악인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찾은 독산동 빌라촌 일대는 적막했다. 금천구는 강서구·구로구·관악구와 함께 서울에서 1인 가구가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꼽히지만, 작년부터 연쇄적으로 터진 ‘빌라왕’ 전세사기 사건 여파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모습이었다. 그동안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왔던 빌라가 기피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빌라를 주로 취급하던 주변 중개업소도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김모 씨는 “오래 장사한 중개업소들은 전세 사기와 관련된 빌라를 중개하지 않는다”며 “사기꾼들은 서울 중랑구나 강서구에 이른바 ‘떳다방’을 차려 계약한 후 빠지는 식으로 사기를 친다”고 했다. 이어 “빌라에 대한 인식이 악화돼 거래가 끊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올해 경기 침체로 정상적인 빌라 매물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약을 연장하면서 거래 자체가 줄고있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도 “최근 세입자들이 전세 매물 자체를 꺼려하면서 이 일대 투룸 빌라 시세가 기존 2억 후반에서 2억 중반으로 5000만원가량 떨어졌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도 과거 3억에 전세 계약을 했던 빌라의 공시가격이 5000만원 하락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금을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수요자들이 빌라를 외면하면서 금천구 내 빌라 전세 거래량도 급감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1월 금천구의 빌라(연립·다세대) 전세 거래량은 전년 동기(136건) 대비 39.7% 감소한 86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빌라가 밀집된 구로구의 연립·다세대 전세 거래량도 지난해(213건)와 비교해 반토막(108건) 났다.
빌라에서 빠져나간 주택 임대 수요는 아파트 전세나 월세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H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기존에 빌라에 거주하던 세입자들이 아파트 전세만 찾아 일대 아파트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며 “인근 독산현대, 독산진도3차 아파트 전세가 평수에 따라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빌라는 전세 가격을 2억8000만원에서 1억원가량 내려야 계약이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도 “최근 문의의 80% 이상이 월세고, 전세 계약이 끝난 세입자들은 월세로 전환하거나 아파트 전세를 알아본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는 계속 전세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고, 간혹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