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의 明

23만원짜리 방에는 창문 없지만…고시합격 꿈꾸며 오늘도 열공중

“사람들은 신림동 고시촌을 우울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곳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곳이에요.”

행정고시를 준비하며 3년째 신림동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는 정민재(25ㆍ가명) 씨. 정 씨가 사는 23만원짜리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정 씨는 “이마저도 2만원을 깎은 가격”이라면서 “창문이 있으면 가격이 더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그의 방에도 TV같은 사치품은 없다. 하지만 상관 없다. 정 씨에게 고시원은 ‘몸만 눕히면 되는’ 잠만 자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신림동 생활을 하며 아직까지 부모님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를 다니는 정 씨는 고등학생들에게 그룹과외를 해 버는 돈으로 어떻게든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정 씨의 기상은 아침 7시 30분. 창문 하나 없는 정 씨의 방은 아침이 밝아도 여전히 칠흑같은 어둠 속에 있다. 10분 간격으로 촘촘하게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만이 정 씨를 깨운다.

신림동 고시촌에서조차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독서실도 저렴한 곳은 한달에 7~8만원이면 가능하지만 시설이 좋은 곳은 20만원에 육박한다.

아예 고시원이 아니라 월세 40~50만원을 넘는 값비싼(?) 원룸에 사는 수험생들도 적지 않다.

정 씨는 이 곳을 ‘군대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어서 빨리 합격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다”는 정 씨의 말엔 오히려 ‘희망’이 느껴진다.

“합격한 사람들 말로는 ‘되보면 안다’고 하더라구요. 신분상승이요.” 정 씨는 오늘도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고시합격을 꿈꾸며 하루를 시작한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