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여름에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에는 여름을 그리워하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사람의 심보입니다. 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한 계절엔 꼭 그 계절을 거스르는 것들이 매혹적이니 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심보를 고치긴 어려울 겁니다.

계절은 종종 바로 전 계절에 흔했던 것들을 모조리 쓸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꽃이죠. 평소에는 잡초처럼 흔하게 화단에서 보이던 이름 모를 꽃들도, 계절이 지나가버리면 일제히 자취를 감춰버리니까요. 어떤 꽃들은 개화기간이 너무 짧아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 사라지고 맙니다. 오호 통재라…….

겨울에 은근히 그리운 것 중 하나가 봄꽃입니다. 봄꽃 중에서도 매화는 향기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꽃입니다. 매화는 치자와 장미처럼 짙은 향기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한 번 맡아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그윽한 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죠. 겨우내 내린 눈이 미처 녹기도 전에 매화향기를 좇아 깊은 산골로 향했을 옛 선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만 한 향기입니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옛 선비들 흉내를 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구조라초등학교의 폐교된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이 든 매화나무 세 그루가 있거든요. 3월이면 늦습니다. 이 어르신들은 2월 초부터 중순께 꽃을 피우기 시작하니까요.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폐교의 고즈넉한 교정에 꽃을 가득 피운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향을 맡고 있노라면 이곳이 속세인지 선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이럴 때엔 브라이언 크레인의 피아노 연주곡 ‘심플 라이프(http://youtu.be/3ar__ocfsJY)’의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가진 선율이 절로 떠오릅니다.

<식물왕 정진영> 1. 겨울에 더욱 그리운 매화향

공사가 다망하다보니 그리워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 꽃이지요. 또한 친해지고 싶어도 얼굴을 몰라 만나고도 지나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기자가 ‘식물왕 정진영’이란 도발적인(?) 이름의 기획으로 직접 촬영한 꽃들과 여러분들 사이에서 중매를 서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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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1. 겨울에 더욱 그리운 매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