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멜로디와 강렬한 리듬으로 가을밤 적신 ‘죽이는 녀석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오늘 밤, 우리는 너의 것이다!”

첫 내한공연 무대에 선 미국의 록밴드 킬러스(The Killers)의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의 서툰 한국어 인사에 스탠딩 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지난 2010년 첫 내한공연의 무산 이후 3년을 기다려온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모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내한공연을 불가피하게 취소했던 플라워스는 3년 전의 아쉬움을 달래듯 무대 구석구석을 오가며 팬들과 눈을 맞췄다. 킬러스 특유의 유려한 멜로디가 강렬한 리듬에 실려 무대 아래로 쏟아지자 팬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지난 5일 오후 8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2 더 킬러스’란 타이틀로 킬러스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킬러스는 브랜든 플라워스를 비롯해 데이브 큐닝(기타), 마크 스토머(베이스), 로니 배누치 주니어(드럼) 4인조로 구성된 밴드로 지난 200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결성됐다. 포스트 펑크ㆍ신스팝ㆍ개러지 록 등 80~90년대 장르 음악들을 절묘하게 결합한 감각적인 사운드를 선보인 킬러스는 2004년 데뷔앨범 ‘핫 퍼스(Hot Fuss)’로 UK차트 1위와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오른 뒤 뮤즈(Muse)ㆍ마룬 파이브(Maroon 5) 등과 더불어 세계적인 록밴드로 자리매김했다. 킬러스는 지난해 정규 4집 ‘배틀 본(Battle Born)’을 발매한 후 전 세계 각지를 돌며 투어를 벌여왔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에 빛나는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오프닝에 이어 무대에 오른 킬러스는 90여 분간 앙코르 포함 17곡을 들려주며 3800명의 관객과 호흡했다. 플라워스는 이름값을 하는 ‘꽃미남’ 외모와 화려한 무대 매너를 앞세워 무대를 장악했다. 특히 드러머 로니 배누치 주니어는 공연 내내 자신의 이름을 ‘궁서체’ 한글로 적은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연주에 몰두해 객석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개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마크 스토머의 부재를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화려한 무대가 공연 내내 이어졌다.

관객들 역시 한국 특유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반응으로 밴드를 흥분시켰다. 관객들은 첫 곡 ‘미스터 브라이트사이드(Mr. Brightside)’부터 앙코르 마지막곡 ‘웬 유 워 영(When You Were Young)’까지 단 한 곡도 빼놓지 않고 따라 부르는 한국 특유의 관객 문화를 보여줬다. 또한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준비한 일부 관객들은 ‘올 디즈 싱스 댓 아이브 돈(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이 흘러나오자 직접 준비해온 종이 가루를 공중에 뿌리며 공연에 흥을 더했다. 공연 초반 다소 원활하지 못한 사운드를 들려줬던 밴드 역시 관객들의 응원에 힙입어 점차 제 기량을 되찾으며 무리 없이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

기자와 공연을 동행한 밴드 스맥소프트(SmackSoft)의 기타리스트 레인보우99는 “킬러스 특유의 유려한 멜로디와 힘 있는 사운드가 잘 드러난 멋진 무대”였다며 “특히 드러머의 연주가 기대 이상이어서 많이 놀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킬러스는 7ㆍ8일 도쿄(일본)를 거쳐, 11일 두바이(아랍에미리트), 26일 마운틴뷰(미국), 27일 라스베이거스(미국)로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