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한국의 모던 포크 음악을 이끌었던 양병집(62). 그가 유신정권 시절인 1974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넋두리’는 발표 3개월 만에 금지 처분을 받으며 전설로 승화했다. “나도 돈 좀 벌고 싶어서 나도 출세 좀 하고 싶어서 일자리를 찾아봤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라던 ‘서울하늘’과 “검은 하늘 바라보며 스러져가는 향기 않고 웃다 웃다 지쳐버린 아름다웠던 꽃송이야”라던 ‘잃어버린 전설’의 현실 풍자적 표현에 내려진 금지 처분의 이유는 ‘가사와 창법 저속’이었다. 금지된 것들을 향한 열망은 억압할수록 열렬해지는 것이어서, 양병집의 음악은 당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저주 받은 걸작으로 평가 받으며 생명력을 이어왔다. 8년 만에 새 앨범 8집 ‘에고&로고스(Ego&Logos)’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온 그를 28일 오후 본사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와 근황을 들었다.
양병집은 “세상에 내 이름과 노래는 전설처럼 떠도는데, 정작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죽기 전에 내 목소리가 제대로 담긴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앨범 발매 소감을 밝혔다.
앨범엔 ‘타복(박)네’, ‘서울하늘’ 등 데뷔 앨범 수록곡 재편곡 버전을 비롯해 호주 이민 시절에 만든 ‘어제처럼 오늘도’, 양병집이 발굴한 싱어송라이터 손지연이 작곡한 ‘가늘게라도’ 등 11곡이 수록돼 있다. 글렌 맥팔레인(Glen Mcfalane), 태연희 등 호주에서 인연을 맺은 음악인들이 편곡과 연주, 작곡 등으로 참여해 앨범에 힘을 보탰다.
데뷔 앨범 ‘넋두리’의 금지 처분은 양병집에게 김민기, 한대수와 더불어 ‘3대 저항가수’란 타이틀을 안겼다. 그러나 그는 “나는 저항한 일이 없다”며 그 타이틀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지난해 말에 출판한 자전적 에세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서도 언급한 일이 있지만 당시 세상에 저항했던 가수는 김민기밖에 없다”며 “나는 그저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모던 포크 음악에 실어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양병집은 ‘저항 가수’란 타이틀을 거부하면서도 포크 음악의 본질은 사회적 메시지 전달임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결국 깊이 있는 가사인데, 가사를 멜로디에 부수적으로 붙는 줄로 아는 포크 음악인들이 많아졌다”며 “기득권층의 횡포는 여전한데 최근 포크 음악의 가사는 이러한 현실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본의 아니게 표현의 자유를 제지당한 양병집은 이후 실력 있는 음악인들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1980년 한국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했던 동서남북의 데뷔 앨범을 제작했다. 정태춘, 해바라기의 이주호와 유익종, 들국화의 전인권과 허성욱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도 그였다. 그가 이화여대 인근에서 운영한 음악 카페 ‘모노’는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집합소였다. 그러나 그가 사비를 털어 제작한 앨범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음악 카페 또한 경찰들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통에 경영난을 겪었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그는 자의반 타의반 떠밀리듯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양병집은 “호주에서 창고 직원, 자동차 딜러, 교포 신문 기자로 일했고 음식점도 운영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며 “시드니에서 종종 버스킹(길거리 공연)을 벌이곤 했는데 그 모습이 현지 음악인들에게 눈에 띄어 그들과 함께 음악을 했다. 앨범에 실린 ‘어제처럼 오늘도’와 같은 곡은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고 회상했다.
양병집은 지난 1999년 홀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야심차게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손지연 등 신인을 발굴해 앨범을 제작했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그는 지난 2005년에 발표한 7집 ‘페이드 어웨이(Fade Away)’가 대중의 외면을 받은 뒤 음악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그는 “이번 앨범은 에세이처럼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것”이라며 “대단한 평가를 받고자 만든 앨범이 아니다. 양병집이란 아티스트가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불렀단 사실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양병집은 “9~10월께 단독 공연을 가질 계획”이라며 “대부분의 사회적 병폐는 우리 삶의 수준보다 높은 것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벌어진다. 조금만 욕심을 줄이려 노력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