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퇴직연금 실물이전으로 한달새 1000억원 순유입
우려했던 ‘머니무브’ 없어…“실물이전 영향 크지 않을 수도”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주요 시중은행에 1000억원 가까운 자금이 순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사 갈아타기가 쉬워지며, 당초 증권사로 자금이 이탈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뒤집은 결과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가 도입된 지난 10월 말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실물 이전을 통해 적립금을 954억원 불렸다. 이 기간 다른 금융기관에 흘러 들어간 자금은 4750억원이었다. 하지만 5704억원을 새로 유치하며 순유입을 기록했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은 가입자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은행들은 약 4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실물 이전 도입을 앞두고 일제히 간판 모델을 앞세운 광고를 선보이는 등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세부 유형별로는 자금 유입과 유출이 다소 엇갈렸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은 5대 은행 합산 2556억원이 전입되고 1092억원이 전출되며, 1462억원이 순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금 액수가 정해져 있는 DB형은 오래 다닐 수 있는 대기업 호봉제 직원에게 유리하다”며 “이들이 금융기관 안정성을 더 중시해 은행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에 확정기여형(DC)은 1372억원 전입, 1478억원 전출로 106억원 순유출을 기록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1776억원 전입, 2180억원 전출로 404억원 순유출을 각각 기록해 대조를 보였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IRP에서 순유출이 유독 컸던 배경에 대해 “고객들이 은행에서 이탈해 증권사 쪽으로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DB형과 DC형은 소속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금융기관으로만 실물 이전이 가능하지만, IRP는 IRP를 취급하는 모든 금융기관으로 이전이 가능하다”며 “수익률을 좇아 조금 더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편 5대 은행의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잔액은 한 달 새 1조7000억원가량 늘었다. 이들 은행의 퇴직연금 합산 잔액은 10월 말 179조1077억원에서 지난달 28일 180조8028억원으로 1조6951억원 증가했다. DB형, DC형, IRP에서 모두 적립금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이 보유한 퇴직연금 계좌 수도 총 695만2298개에서 700만8180개로 5만5000개가량 증가했다. 퇴직연금 적립금 증감은 실물 이전 외에도 신규 가입과 퇴직금 지급, 추가 납입이나 중도 인출, 주가 변동에 따른 펀드 평가손익 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말에 연금을 납입하는 계절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며 “은행도 연말에 인사평가를 마무리하면서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벌이는 시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년 11~12월은 연간 퇴직연금 적립 중 70% 이상이 몰리는 시기”라며 “실물 이전 서비스가 전체 적립금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