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아직도 다리의 후들거림이 계속되고 있다. 드릴 말씀이 없다.”
27일 심상정 통합진보당 전 원내대표의 말이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대표적인 진보정치의 길을 걸어온 심 전 원내대표가 정치인생 사상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됐다. 전날 열린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의 제명안 의원총회에서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그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선출된 지 불과 보름 만의 일이다.
지난 10일 심 전 원내대표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중단 없는 혁신으로 선명한 민생 진보 야당을 만들겠다. 강한 변화와 혁신으로 야권연대를 회복하고 진보적 정권교체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립파인 김제남 의원 설득에 실패하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말았다.
심 전 원내대표는 학생운동ㆍ노동운동에 잔뼈가 굵은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산증인이다. 1959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기간동안 가부장적인 학생운동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껴 서울대 최초의 총여학생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1980년대 그는 구로공단에서 공장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어린 여공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목도했다.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미싱사 자격증을 따고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해 ‘민주노조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구로동맹파업 주동자로 지목돼 전국적인 지명수배자가 되기도 했다. 이후 수 년 간의 도피생활 끝에 경찰에 붙잡힌 심 의원은 1993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 이후 25년간 노동운동을 한 그는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추궁해 1조 8000억원의 국고손실을 밝혀냈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한미FTA의 실상을 밝혀내는 등 주목할만한 의정활동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심 의원은 당내 노선 갈등으로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2008년에는 진보신당을 창당해 대표를 역임했다. 그러다가 ‘진보대통합’ 논의가 활발해진 2011년말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이 무산되자 노 의원과 함께 진보신당을 탈당하게 된다.
곧이어 심 전 원내대표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해 공동대표직을 다시 맡았다. 올해 열린 19대 총선에서 그는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를 접전끝에 누르고 당선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지만 곧바로 비례대표 경선 부정 파문이 불거지며 정치인생 사상 최대 시련을 맞게 된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깊이 숙고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심 전 원내대표가 다시 한번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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