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재결정명령 집행정지 소비자 피해 우려
배달앱 수수료·광고료 인하 필요성 재확인
네이버·두나무 결합엔 “신중한 심사 필요”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쿠팡과 한화의 집행정지 신청으로 현장조사와 자료 확보가 제약된 데 유감을 표하면서 기업이 조사를 피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의 개정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치권에서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 데 대해서도 재차 반박했다. 25년 넘게 해외 기업에 법을 집행해왔지만 차별적이거나 절차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집행정지 확산…강제조사권 도입엔 선 그어
주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법원이 쿠팡의 현장조사 결정과 한화의 자료제출 명령에 대한 효력정지 신청을 각각 받아들인 데 대해 “굉장히 유감”이라며 “현장조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은 매우 중대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쿠팡 조사에 대해서는 법원 결정으로 조사가 30일가량 유보됐다며 “실질적으로 저희 조사의 실효성은 무력화됐다”고 했다.
그는 “공정위 현장조사는 피조사자의 동의를 구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경찰이나 검찰의 형사적인 압수수색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라며 “현장조사 때문에 기업이 영업을 못 한다든지 생산활동이 중단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의 대부분의 관련 법들은 경제적 약자들의 최후 보루”라며 “소상공인의 권익을 지키는 공정위의 조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면 앞으로 이들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조사를 이런 방식으로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보다 분명하게 없애는 방식의 개정 방안에 대해서도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강제조사권이나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까지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부분의 조사는 협조를 잘 받아서 하고 있다”며 “2개의 사건 때문에 지금까지 도입하지 않았던 강제조사, 특사경 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고려해야 할 만큼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장조사뿐 아니라 처분을 둘러싼 집행정지도 잇따르고 있다. 법원이 제지·제분업체 등에 내린 가격재결정명령의 효력을 잇달아 정지한 데 대해 주 위원장은 “저희가 주기적으로 가격 재결정과 경쟁 회복 여부를 판단할 기회가 상실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가격재결정명령이 어떤 회복할 수 없는 침해를 야기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문이 든다”며 “반면 가격재결정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회복할 수 없는 침해는 소비자 전체에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 김범석 허위자료 제출 여전히 검토 중…“엄정 조치”
쿠팡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문제 제기에도 반박했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최근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한 외국 공무원의 입국을 제한하는 법안을 심사하면서 쿠팡을 사례로 거론했다. 짐 조던 법사위원장은 주 위원장을 지칭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그 사람’(the guy at the Korean FTC)을 언급하며 입국 제한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주 위원장은 “우리가 해외 기업에 대해 법을 집행한 역사는 25년이 넘는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법 집행의 비차별성이라든지 절차적 불공정성에 대해서 문제 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공정한 절차를 지키면서 비차별적으로 법 집행을 해나갈 예정”이라며 미국 정부나 의회에 의견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면 외교부를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 경쟁당국과의 양자 회담에서는 개별 사건보다는 양국 현안과 경쟁법 집행의 일반적인 방향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관련 허위자료 제출 여부에 대해 “자료 검토를 통해 위법사항을 아직도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며 “신속히 검토를 마무리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종전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당시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제출받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이와 배치되는 자료가 확인됐다는 게 주 위원장의 설명이다.
쿠팡의 동일인 지정 변경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과 관련해서는 집행정지가 계속되면 올해 지정의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며 “사법부가 빨리 판단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배달앱 수수료 낮춰야…두나무·네이버 신중 심사
배달앱 수수료와 광고료는 현재보다 낮아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주 위원장은 가격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과도한 가격 책정은 입점업체들의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어렵게 한다”며 “그 정도로 과도한 가격에 대해서는 규제당국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담합 제재 이후에도 제품 가격이 오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과 담합에 따른 가격 인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쇄용지 가격과 관련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공정위가 가격 인상 자체만 가지고서 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담합으로 올라간 가격에 대해서는 규제를 통해서 가격을 경쟁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란 가격과 관련해서는 최근 가격 결정 행위로 제재받은 대한산란계협회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시장 질서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기업결합 심사 지연 지적에는 심사 기간이 해외 경쟁당국과 비교해 길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두나무·네이버 기업결합에 대해서는 “2개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간의 결합이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며 “경제분석을 위한 자료가 굉장히 많이 필요해서 10차례 이상의 자료 요청을 할 수밖에 없는 복잡한 기업결합심사”라고 설명했다.
국고채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해서는 “국고채 입찰 제도가 복잡한 구조여서 신중한 논의가 필요했다”며 “조만간 합의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지배적 지위나 독점력 남용을 다른 수단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경우 구조적 조치를 활용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재산권 침해 우려에 대해 “재산권은 지켜주되 영업을 양도하게 함으로써 면허를 빼앗아 오는 것”이라며 “재산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향후 주요 추진 과제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 개선과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시·규율 강화를 제시했다.
그동안 국가 안보의 특수성으로 경쟁이 제한됐던 방위산업의 문턱을 낮춘다. 특정 품목을 방산물자로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재검토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의 진입을 늘려 방산 분야의 연구·개발(R&D) 혁신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먹거리·교육·에너지·생필품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는 감시 역량을 집중한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중점조사기획단을 활용해 불공정행위를 신속하게 점검한다. 기업 규모를 고려한 과징금 부과체계도 마련한다.
같은 날 출범하는 37명 규모 경제분석국은 제재 이후까지 들여다본다. 담합 제재 이후 시장가격이 담합 이전 경쟁가격 수준으로 회복되는지 검증·모니터링하고 산업·시장구조 전반의 경쟁 상태를 분석해 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제재를 받고도 담합을 반복하는 사업자의 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방안도 입법에 속도를 낸다. 등록·허가 취소나 영업정지 등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안전·환경·운송 분야 등 담합 사례가 지속된 약 20개 업종을 놓고 관계 부처와 제도 도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게 주 위원장의 설명이다.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적용 분야와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가맹점주의 협상력도 한층 강화한다. 가맹점주 수가 30명 미만인 소규모 가맹본부에서도 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단체등록 요건 완화를 검토한다. 가맹본부가 협의를 회피하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협의 거부 사유를 최소화하고 사실상 협의에 응하지 않는 경우를 금지행위로 구체화하기로 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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