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휴전 넘어 핵 묶은 ‘포괄 종전안’

美해상봉쇄 해제·이란 호르무즈 개방 맞교환

누가 먼저 이행하느냐 놓고 이견 여전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 6일(현지시간) 한 화물선이 정박해있다. [AP]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 6일(현지시간) 한 화물선이 정박해있다. [A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단순 휴전을 넘어 이란 핵프로그램까지 한꺼번에 다루는 ‘포괄적 종전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고 핵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는 대신 미국은 해상봉쇄를 풀고 대이란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이 새로운 협상 초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8일(현지시간) AP통신은 지역 관리 3명과 미국 관리 2명을 인용해 중재국들이 미국과 이란을 상대로 전투를 끝내고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기 위한 새로운 합의안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논의 중인 초안의 골자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미국의 이란 항구 해상봉쇄 해제를 맞바꾸는 것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완화도 협상 대상에 포함됐다.

여기에 미국은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AP에 따르면 미국 측 요구에는 국제 핵사찰단의 이란 입국 허용이 포함돼 있다. 미국은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란과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최근까지 진행된 협상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이란은 미국이 해상봉쇄를 해제하고 동결자금을 풀어주며 원유 수출 제재를 완화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겠다는 데 협상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미국은 호르무즈 문제만 해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핵무기 보유 저지를 전쟁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운 만큼 종전 합의에도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A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핵 문제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제재 완화와 동결자금 일부 해제를 허용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란 역시 핵 문제에서 일정 부분 유연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재 협상 구도는 ‘호르무즈-제재’의 맞교환에서 ‘호르무즈-제재-핵’을 하나로 묶는 형태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핵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을 허용하면 미국이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구조다.

특히 핵사찰 허용이 현실화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종전을 선언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만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과 달리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장치를 확보했다는 점을 성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쟁 장기화와 고유가 부담을 줄여야 하고, 이란은 미국의 해상봉쇄와 원유 제재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다만 합의까지 가장 큰 장애물은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는 문제다.

이란은 미국이 먼저 해상봉쇄와 제재를 풀어야 핵 문제와 호르무즈 개방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이란의 핵 양보를 확인한 뒤 제재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AP는 양측이 조치의 시기와 이행 순서를 놓고 여전히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이란이 합의 내용을 실제로 이행할지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지난 6월 양측이 체결한 종전 양해각서(MOU)도 며칠 만에 흔들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합의에는 이란 핵프로그램을 60일 동안 협상하는 방안이 담겼지만 호르무즈 해협에서 다시 충돌이 벌어지면서 합의가 사실상 무산됐다. 미국 측은 이란이 상선을 공격해 잠정 합의를 위반한 전력을 들어 새로운 약속의 이행 가능성에도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이란이 최근 제시한 이른바 ‘7일 계획’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거부한 상태다. 이란은 미국이 해상봉쇄를 풀고 동결자금을 해제하며 원유 판매 제재를 완화하면 7일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물밑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란 국영 언론에 따르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뉴욕에서 카타르 중재자들과 협상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아라그치 장관과 만나 중재 노력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AP에 트럼프 대통령이 비군사적 해결책이 가능하다면 이를 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란 측 역시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다. 다만 이란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에는 선을 긋고 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이날 이란 대표단이 뉴욕에서 미국 측과 새로 직접 협상할 계획은 없으며 카타르를 통해 전달한 제안에 대한 미국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양측 모두 경제적 부담이 커진 점도 협상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공격과 통항 차질에 따른 고유가가 부담이고, 이란은 해상봉쇄와 원유 제재 강화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sj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