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일본 마쓰야마 이스테지 사원
일본 마쓰야마의 불교 1
“捨 : 마음에 얽힌 모든 것을 버리고 평정심으로 기다린다.”
깜깜하고 기이한 분위기의 ‘이스테지 동굴사원’ 벽에 기대어 있는 여러 목판 글귀 중 하나다.
‘捨(버릴 사)’는 불교에선 ‘마음이 언제나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연휴 기간 부산에서 1시간 거리의 일본 소도시 ‘마쓰야마’시(市)에 왔다. 온천의 고장으로 조그만 도시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일본 사찰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 몇 군데 사찰을 방문했으나 가이드도 없고, 일본어도 몰라 번역기에 의존하며 겉핥기 기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는 통상 대승불교라 하여 한 뿌리로 보고 있지만 일본불교는 우리에게 있어 양가적 감정이 실려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왕인박사 등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진문물과 함께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대처승 중심으로 전국 사찰을 정비하는 등 한국불교의 일본화를 추진해, 해방 후 왜색 문화 척결 과정에서 한국불교는 비구승과 대처승 간 극심한 갈등과 혼란으로 분열의 역사를 겪은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불교 하면 대처승이 떠오르고, ‘야스쿠니 신사’로 대표되는 신사(神社)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 불교의 영향력은 미미하리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일본 대부분의 도시에서 사찰보다는 신사가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80%가 불교 신자라고 한다.
극히 일부 수행 전통을 유지하는 비구승들이 있긴 하지만, 일본 사찰 대부분은 육식, 결혼, 사찰 세습을 기본으로 하는 대처승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는 1868년 메이지 정부에서 신도를 국교로 하면서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崇神抑佛) 정책 과정에서 승려는 육식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육식처대(肉食妻帶) 정책을 펼쳐 1945년까지 유지됐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6852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지만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등 4개의 본섬으로 구분하고 ‘마쓰야마’가 있는 시코쿠(四國) 섬은 그중 가장 작은 섬인데 이곳에 ‘오 헨로’라 불리는 천 년 이상 이어져 온 불교 성지 순례길이 있었다.
시코쿠에서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어 밀교를 기반 한 ‘진언종’을 창시한 구카이 대사 (홍법대사, 774~835년)의 발걸음을 좇는 순례길이다. 번호가 붙은 88개의 절을 순서대로 돌아 다시 1번 절로 돌아오는 1200㎞ 길인데 ‘마쓰야마’에도 88개 사찰 중 8개의 절(46번부터 53번까지)이 있었다.
그중 세 곳 49번 조도지(浄土寺), 50번 한타지(繁多寺), 51번 이스테지(石手寺)과 조동종 사찰 고쇼지(高昌寺)를 순서 없이 짬짬이 찾아갔다.
‘마쓰야마’의 대표적 사원이며 많은 중요 문화재가 있는, 순례길 51번째인 이스테지(石手寺)는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도 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풍스러움, 그리고 밀교의 특이한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고 있어 이스테지 사원과 그 외 사원으로 2회에 나눠 글을 쓰고자 한다.
신도와 불교의 결합, 그리고 대처승의 일본불교
한타지 사원을 방문했을 때 본당 옆에 신사를 상징하는 하늘 천(天)자 모양의 큰 문(門)과 사당이 있었다. 우리나라 홍살문과도 흡사한 것으로 ‘인간과 신의 세상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하는 ‘도리이’(鳥居)라고 한다.
이스테지 사원에는 ‘신사’는 없지만 사찰 내 한쪽에 ‘에히메현 버마 전몰자 위령탑’이라는 위령제를 지내는 규모 있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불교는 고대 6세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중국을 통해 전래돼 지배 계급으로부터 크게 환영받아 귀족종교화 됐고 애도시대 등 무사시대에는 막부의 보호를 받아 서민과 무사들을 위한 종교가 돼 메이지정부 이전까진 토속신앙이었던 신도(신사)와 불교가 결합하며 크게 번창했다.
중세엔 신(神)과 불보살(佛菩薩)을 한 공간에서 모시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이 일반화됐는데 현세의 종교는 ‘신도’이며, 내세의 종교는 ‘불교’라고 하거나, “일본의 토착신들은 부처가 일본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습을 바꿔서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들로 신사(神社) 안에 절이 있거나 절 안에 신사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가 각 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 결합하며 나타나는 흔한 현상인데, 한국은 산신각, 칠성각, 용왕각 등 산신이 결합했고, 중국·대만은 도교와 결합했다.
메이지 정부는 신도를 국교화하면서 불교를 분리하고 각지의 사찰들도 폐쇄, 철거되기도 했으나 근대국가 형성 속에서 ‘장례불교’라 불릴 만큼 불교의 의례 기능이 확대되며 다시 생활 영역에 자리 잡아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게 된 것 같다.
일본인에게 있어 승려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절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장례 의식을 주관하며 사찰은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직업인’이라는 ‘대처승’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과 달리 사찰 대부분이 도심에 있고 불자 여부를 떠나 장례는 불교 의식에 따라 진행하고 사원에 딸린 가족 납골당에 안치하는 등 사찰이 장례의식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일본에는 약 7만5000채의 절과 20만명 가까운 승려와 8000만 명 정도의 신도가 있다고 한다.
네 곳의 사찰을 순례하는 과정에 스님은 딱 한 번 봤는데, 일반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촘촘한 그물망으로 둘러싸인 이스테지 본당 안에서 염불하는 스님이었다.
밀교적 특성이 있는 진언종 법당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가 보다. 일본 국민의 90%가 불교 가르침을 신뢰하고 있어 윤리·문학·예술·내세관 등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대처승 제도가 갖는 문제가 많아 사찰 및 승려에 대한 신뢰도는 무척 낮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시코쿠 88사찰 순례길 51번 ‘이스테지’(石手寺)
일본의 대표적 온천인 도고온천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88사찰 순례길 중 51번째 번호가 붙은 마쓰야마 ‘이스테지’ 사원이 있다.
인구 50만 명의 ‘마쓰야마’시는 시코쿠 섬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며 시코쿠섬 4개 현 중 서부지역에 있는 ‘에히메’현의 현청이 있는 곳이다.
도로에 접한 도심 사원에 도착하니 사원 뒤쪽 동산 위에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입상이 들어온다.
일본어 알파벳인 히라가나를 만들었고, 일본 불교 한 종파인 진언종을 창시해 88순례길의 출발이 된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승 중 한 분인 구카이 대사(홍법대사 :774년-835년)의 16m 높이의 입상이다.
일주문을 지나 목조건물 긴 통로길 좌우엔 사하촌처럼 팥찰 떡집, 기념품점 등 자잘한 상가들이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는데 초입부터 오래된 사찰임을 드러내듯 고풍스러움이 풍겨온다.
이스테지(石手寺)는 729년에 지어진 사찰로 에히메현을 대표하는 밀교 건축 양식과 시코쿠 순례 문화가 완벽하게 보존된 사찰이다.
긴 통로 길이 끝나는 지점 우측에 먼저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곧바로 문 양쪽 철망 안에는 부릅뜬 눈으로 위엄을 뿜어내며 서 있는 거대한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 인왕)을 세운 인왕문(仁王門)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문(樓門) 구조와 팔작지붕에 간결한 목조 구조체로서 가마쿠라시대 후기(1318년) 건축의 대표작으로 일본 국보라고 한다.
문 좌우에는 성인 키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 짚신이 걸려있는데 순례자들 다리 건강을 비는 마음이라는 설과 악귀를 쫓는 거인의 상징이라는 설이 있는데, 짚신 사이에 동전을 꽂고 기도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 나도 동전을 꽂고 따라 해봤다.
인왕문 안쪽 큰 마당에는 정면에 본당과 석탑들, 그리고 좌측엔 종루, 우측엔 거대한 목조 삼층탑이다.
종루(鐘樓)에 걸린 범종(梵鐘)도 1251년에 주조된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라는데, 종루 주변엔 서낭당처럼 기원문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일본의 사찰 범종은 누구나 종을 칠 수 있도록 개방된 듯 보여 필자도 종을 치면서 보니 범종 표면엔 지역 주민들의 평안을 비는 기원문들이 새겨져 있다.
높이 약 25m의 목조탑임에도 안정감이 돋보이는 삼층탑(三重塔)은 단청이나 채색 없이 고목(古木) 특유의 질감을 드러내고 있어 고풍스러운데 이 또한 본당 (本堂)과 함께 일본의 중요 문화재라 한다.
일본 사찰 전각들 대부분은 우리나라 고려시대 전각처럼 단청이나 채색 없이 나무 그대로의 질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전각들 벽면에 여러 표식과 기원문들이 혼잡스럽게 붙어 있는 모습은 밀교(진언종) 적 특성인 듯하다.
13세기 말에 지어진 본당(本堂)은 전형적인 일본식인 뾰족하게 올라간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며 본당 중앙 깊숙한 곳에 약사여래좌상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다고 한다.
진언종 밀교 본당의 전형적인 구조인 내진(內陣, 스님들의 공간)과 외진(外陣, 일반 참배객 공간)이 명확히 구분됐다고 하는데 입구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돼 있어 본당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
그나마 일본 사찰 순례 중 처음으로 그물망 너머 독경하는 스님을 볼 수 있는 것이 행운이었다.
본당 왼편에는 역시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호마당(護摩堂)이 있으나 출입뿐만 아니라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도록 했다.
오직 본당 왼쪽에 있는 홍법대사를 비롯한 고승들을 모신 ‘대사당’만이 들어가서 만지며 기도할 수 있었다.
사찰 곳곳에는 만다라 고리 등 다양한 형상물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동전을 투입하면 땡그랑 소리를 내는 불전함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
자궁동굴이라는 기이한 이스테지의 ‘만다라 동굴’
본당 오른쪽 뒤편에 동굴사원 들어가는 좁고 어두운 암벽 입구 붉은 철문이 보인다.
밀교(密敎)의 태장계(胎藏界) 만다라를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현한 동굴인데 1989년에 인공적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조명이 거의 없는 약 160m의 동굴 길에는 빨간 목 스카프와 빨간 모자를 쓴 수십 기의 지장보살과 불상이 줄지어 서있다.
토굴과 교리를 적은 목판들도 간혹 보이며, 벽면에 벽화 등 종종 눈에 띈다.
동굴 내부의 암흑을 통과하는 과정은 ‘어머니의 자궁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는 환생(Rebirth)’을 의미한다고 해 오직 발소리에만 집중하며 걷게 된다.
동굴을 빠져나오니 뒤편 도로 길이며 뒷산에는 커다란 홍법대사상이 더 크게 들어온다. 다시 왔던 동굴로 들어와 초입 부문 좌측에 새로운 동굴 길로 들어가 본다.
더욱 깜깜해진 좁은 동굴 길은 아직 조성 중인 듯하지만 벽을 따라 수많은 불상이 진열돼 있고, 벽 곳곳에는 불화들이 조성돼 있으나 깜깜해 불을 밝히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굴을 벗어나니 본당 옆 대사당 뒤쪽이었다.
처음 160m길 동굴을 빠져나오면 왼쪽 산책로에 오백나한상을 모신 거대한 황금빛 돔이 있는 ‘안쪽 사원’과 석가모니의 목조 고행상, 목조 나한상, 거대한 손조각상 등이 있다고 하는데 필자는 다시 동굴로 들어감으로써 놓치고 말았다. 사찰 입구 표지판에도 기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테지 보물관(寶物館)과 납골당
사찰 인왕문을 지나 납경소(종무소) 우측으로 가면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의 불상 및 금속 공예품 등을 전시한 조그만 사찰 박물관이 있다.
불경, 밀교 법구, 경통(經筒), 석수 등 오래된 듯 낡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유물들과 이스테지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깔끔하게 정돈되고 개방적인 한국의 사찰 분위기와 달리 어지럽고 산만하게 배치된 이스테지 사원처럼 박물관 또한 그러했지만 오랜 유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찰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사원 밖으로 나오니 바로 앞에 넓게 조성된 가족납골당이 있었다. 한국의 납골당과 달리 크고 작은 비석들이 복잡하게 세워져 흡사 일반 묘지처럼 보인다.
일본은 국민들이 불교식 장례문화를 통해 사찰과 만나고 사찰은 장례의식으로 유지되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납경소(종무소)앞에는 ‘운세 뽑기’와 ‘액년 표지판’ 등이 있어 탐방객들이 비용을 내고 재미 삼아 뽑는 걸 보니 이스테지 사찰은 관광 사찰 느낌도 있으며 마쓰야마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중심 사찰로 보인다.
아기가 돌을 쥐고 태어났다는 설화에서 기인한 뜻을 지닌 이스테지, 우리말로 석수사(石手寺)는 88 순례길에서도 독특한 예술품이 많고 기묘한 분위기를 갖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대도시의 역사성 있는 큰 사찰이나 유적은 아니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소도시 사원을 통해서나마 일본 사찰 분위기를 조금은 살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 일본 편 2도 마쓰야마시에 있는 50번째 순례길 한타지 사원(번다사), 49번째 순례길 죠도지(정토사) 사원과 선종(조동종) 사찰인 고쇼지(高昌寺, 고창사)를 통해 또 다른 측면에서 일본불교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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