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국제구조위원회(IRC) 공동 기획

<기후재난, 우리가 모르는 피해자들②-아프가니스탄>

자연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명제는 틀렸다. 그 누구보다 철저히 가난을 가려내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막대한 화석연료를 태우며 경제성장을 이룬 곳이 있다. 그리고 온실가스가 만든 폭염과 가뭄, 홍수의 대가를 온몸으로 받는 곳이 따로 있다.

이른바 기후변화의 피해자들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은 누구인가. 구분이 모호할지라도, 책임의 무게는 명확히 다르다.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빠른 산업화를 거치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고, 그만큼 풍요로운 삶을 축적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여전히 ‘불편’의 영역에 가깝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생사’의 영역이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재난으로 한순간 집과 일터를 잃고, 끼니를 줄이고 질병에 시달리며,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격한다.

피해자 다수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늘을 원망할 뿐이다.

헤럴드경제는 이번 기획에서 현지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국내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해외 기후위기 피해자들의 실제 삶을 따라간다.

국경을 넘는 10대 소년들의 모습 재구성.[챗GPT로 제작한 이미지]
국경을 넘는 10대 소년들의 모습 재구성.[챗GPT로 제작한 이미지]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제발 살아 있기만 해”

열두 살 아들이 집을 나서는 날,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남은 인생을 건 여정, 국경을 넘으며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도 알고 있었다.

이동 중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납치되거나 몹쓸 짓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물론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사히 도착해도, 불법 신분의 10대 소년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일을 할 수도 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얻어맞거나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사람을 사고파는 조직에 넘어가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부모는 아이를 떠나보냈다. 곁에 둔다고 해서, 아이가 살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26년 2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자우자르 마을에서 굴다스타(32)와 남편 압둘 아하드(35)가 집 주변에 서 있다. 이 지역은 4년간 이어진 가뭄으로 우물이 마르고 수확이 줄었으며, 가족은 두 달 동안 차와 빵에 의존할 정도로 식량난을 겪었다..[국제구조위원회 제공]
2026년 2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자우자르 마을에서 굴다스타(32)와 남편 압둘 아하드(35)가 집 주변에 서 있다. 이 지역은 4년간 이어진 가뭄으로 우물이 마르고 수확이 줄었으며, 가족은 두 달 동안 차와 빵에 의존할 정도로 식량난을 겪었다..[국제구조위원회 제공]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선택을 상상할 이유가 없었다. 집에는 100마리가 넘는 양이 있었고 농사를 지을 땅도 있었다. 넉넉하지 않아도 부모가 해왔던 대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면 가족이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매년 찾아오던 비가 오지 않았다.

과거에는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던 최악의 날씨. 가뭄 끝에 우기가 찾아오면 홍수가 났고, 그렇게 물이 휩쓸고 간 땅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하얗게 말라붙었다.

물이 줄면서 가축부터 사라졌다. 먹일 물도, 풀을 뜯길 목초지도 부족했다. 한때 100마리가 넘던 양 떼는 이제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압둘 하크(30)가 장남 나키불라(8)와 마을 주변 산을 바라보고 있다.[국제구조위원회 제공]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압둘 하크(30)가 장남 나키불라(8)와 마을 주변 산을 바라보고 있다.[국제구조위원회 제공]

농사로 메울 수도 없었다. 씨앗을 뿌려도 물이 없으면 거둘 것이 없었다. 부모도, 그 부모도 평생 농사와 목축으로 살아왔다. 다른 일로 돈을 벌 방법도 없었다.

먼저 병원을 포기했다. 몸이 아파도 집에서 버텼고, 약을 살 돈이 있다면 식량부터 샀다. 그래도 부족하자 아이의 학교도 포기했다. 생존 외 모든 걸 포기했지만, 아이가 굶주리는 날은 자주 찾아왔다.

굶주림에 우는 아이를 달래는 시간이 늘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여유도 없는 상황. 결국 아이를 떠나보내기로 결정했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었다.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선택. 살아남아, 허드렛일 하나라도 얻을 가능성 하나를 보고 한 선택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제 몫의 끼니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보호자 없이 이란과의 주요 국경 검문소를 넘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유니세프 제공]
보호자 없이 이란과의 주요 국경 검문소를 넘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유니세프 제공]

결국 아들은 집을 떠났다.

그날부터 부모는 아이가 밥을 먹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맞고 있지는 않은지, 살아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제발 살아 있기만 해”

집을 나서던 날 건넨 한마디가, 이제 부모가 아이에게 바랄 수 있는 전부가 됐다.

2026년 3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자우자르 마을에서 굴다스타(32)와 남편 압둘 아하드(35)가 집 주변에 서 있다. 이들 가족은 4년째 이어진 가뭄과 식량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국제구조위원회 제공]
2026년 3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자우자르 마을에서 굴다스타(32)와 남편 압둘 아하드(35)가 집 주변에 서 있다. 이들 가족은 4년째 이어진 가뭄과 식량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국제구조위원회 제공]

위 내용은 국제구조위원회(IRC) 활동가들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접한 기후재난 피해 농민들의 사례를 종합해 재구성한 이야기다. 복합재난으로 생계가 무너진 현지 가정 중에서는, 생존을 위해 자녀를 국경 너머로 보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주로 12~17세 청소년들이다.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는 아프간 아이들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폭력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 기후충격으로 농업과 목축 기반이 무너진 데다 경제난과 분쟁의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위험한 이주가 유일한 선택지로 남은 결과다.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에서 물을 구하러 걷고 있는 무함마드 사디크(25). 가축 사육과 피스타치오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강이 말라붙고 농작물과 가축 모두 물과 먹이가 부족한 상황이다. 두 살 딸 사미아는 영양실조로 치료를 받았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에서 물을 구하러 걷고 있는 무함마드 사디크(25). 가축 사육과 피스타치오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강이 말라붙고 농작물과 가축 모두 물과 먹이가 부족한 상황이다. 두 살 딸 사미아는 영양실조로 치료를 받았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국경 넘는 사람들…더 이상 선택의 문제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주의·개발 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보스턴 파힘 IRC 아프가니스탄 프로그램 디렉터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경 밖에서 아프가니스탄인에 대한 대규모 강제송환이 이뤄지는 상황이지만, 가족들은 자녀를 다시 그 방향으로 보내고 있었다”며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사람들이 향하는 이란과 파키스탄에서는 오히려 아프간인들을 대규모로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최근 두 나라가 체류 자격이 없거나 불안정한 아프간인을 중심으로 단속과 송환을 강화하면서 대규모 귀환이 이어지는 것.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물을 구하러 이동 중인 무함마드 사디크(25). 가축 사육과 피스타치오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인근 강이 완전히 말랐고, 비가 오지 않으면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뭄으로 가족의 식량 사정도 악화돼 두 살 딸 사미아는 영양실조를 겪었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물을 구하러 이동 중인 무함마드 사디크(25). 가축 사육과 피스타치오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인근 강이 완전히 말랐고, 비가 오지 않으면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뭄으로 가족의 식량 사정도 악화돼 두 살 딸 사미아는 영양실조를 겪었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문제는 붙잡혀 다시 돌아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는 아이들은 이동 과정과 도착 이후 모두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유니세프 조사에서는 이란·파키스탄 국경을 넘는 아프간 소년들이 인신매매에 취약하고, 농업·건설 현장 등의 강제노동이나 성폭력 피해를 겪은 사례도 확인됐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를 다시 바로 그 방향으로 보내고 있다. 붙잡히면 다시 고향으로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지에 남아 굶는 것보다 국경을 넘어 일자리를 찾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여정의 위험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보스턴은 “이동 경로는 매우 위험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며 “하지만 물이 없고 가축을 먹일 목초지도 없으며 지역에서 구할 일자리마저 없는 상황에서 이주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2026년 2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자우자르 마을에서 압둘 아하드(35)가 집 주변을 걷고 있다. 4년간 이어진 가뭄으로 우물이 마르고 농사가 실패하면서 가족은 두 달간 차와 빵에 의존할 정도로 식량난을 겪었다. 생후 8개월 아들은 영양실조로 IRC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2026년 2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주 자우자르 마을에서 압둘 아하드(35)가 집 주변을 걷고 있다. 4년간 이어진 가뭄으로 우물이 마르고 농사가 실패하면서 가족은 두 달간 차와 빵에 의존할 정도로 식량난을 겪었다. 생후 8개월 아들은 영양실조로 IRC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실제로 주민들을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게 먹일 음식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스턴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굶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행동에 나선다”며 “많은 사람에게 이주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된다”고 설명했다.

“2030년이면 물 고갈”…수도 한복판서 물통 든 사람들

이 같은 생계 붕괴의 한가운데에는 빠르게 심각해지는 물 부족이 있다.

보스턴은 지난해 ‘2030년이면 수도 카불의 물이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고 했다. 생각이 달라진 건 카불의 IRC 사무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물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을 직접 본 뒤였다.

가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123RF]
가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123RF]

그는 “그때 물 부족이 미래에 닥칠 위험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며 “10년 전만 해도 카불의 지하수위는 약 30m였지만 현재는 150m까지 내려갔다”고 말했다.

별도의 분석에서도 카불은 지하수를 자연적으로 다시 채우는 양보다 연간 약 4400만㎥ 더 끌어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식수원인 관정의 절반가량이 이미 말랐으며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30년께 대수층이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 서부 바드기스에서 IRC는 상수도관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6개월이면 끝날 예정이었지만 9개월이 지나도록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원을 찾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무함마드 사디크(25)가 가뭄으로 말라붙은 강을 바라보고 있다. 가축 사육과 피스타치오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 수확이 줄고 가축에 먹일 물과 먹이도 부족한 상황이다. 두 살 딸 사미아는 영양실조로 IRC 이동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무함마드 사디크(25)가 가뭄으로 말라붙은 강을 바라보고 있다. 가축 사육과 피스타치오 재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 수확이 줄고 가축에 먹일 물과 먹이도 부족한 상황이다. 두 살 딸 사미아는 영양실조로 IRC 이동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국제구조위원회 제공]

보스턴은 “이런 상황은 저희도 처음 겪는 일”이라며 “일부 지역에서는 강수량이 평년보다 45% 부족했고 주민들은 물이 없어 이제는 가축을 더 이상 기를 수조차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던 어려운 시기가 이제는 거의 끊이지 않는다. 우기가 지나면 거의 매번 홍수가 나고, 며칠 뒤에는 땅이 다시 말라 하얗게 변한다”고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약 80%는 농업에서 식량이나 소득을 얻는다. 물 부족이 몇몇 농민의 소득 감소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의 생존 문제로 이어지는 이유다.

1380만명 먹을 것 부족…물 사라지면 병원·학교도 멀어진다

올해 아프가니스탄의 전체적인 농업 여건은 지난해보다 일부 나아졌다. FAO에 따르면 올해 3~8월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은 평년 수준이거나 이를 웃돌았고, 밀 생산량도 평년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챗GPT로 제작한 이미지]
[챗GPT로 제작한 이미지]

그럼에도 올해 4~9월 약 1380만명이 위기 이상 수준의 급성 식량불안을 겪은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약 290만명은 한 단계 더 심각한 ‘긴급’ 상태에 놓였다. 여성과 어린이 약 490만명은 올해 영양실조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프가니스탄의 굶주림을 기후변화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경제난과 실업, 높은 식료품 가격, 분쟁의 여파와 줄어든 국제 원조가 함께 영향을 미친다.

다만 이미 다른 생계수단과 저축이 없는 농가에는 가뭄이나 우물의 고갈이 마지막 버팀목을 없애는 충격이 될 수 있다. 보스턴은 “재난을 겪은 가족들은 병원 방문을 미루고 자녀를 학교에서 빼낸 뒤 가진 자원을 식량에 집중한다”며 “그러고도 버틸 수 없으면 결국 살던 곳을 떠난다”고 말했다.

가뭄으로 땅이 갈라져 있다.[게티이미지뱅크]
가뭄으로 땅이 갈라져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상황에서 국외에 살던 아프간인들의 대규모 귀환도 이어지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올해 9월 22일까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 사람은 약 123만명으로, 이 가운데 약 51만명은 추방된 경우였다. 이미 부족한 물과 일자리, 식량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눠야 하는 셈이다.

보스턴은 “아프가니스탄은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여러 위기가 동시에 중첩된 상황”이라며 “기후변화로 물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농업 기반이 무너지는 동시에 많은 귀환민이 이미 자원이 부족한 지역사회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3.5% 배출했는데…피해는 집중

아프가니스탄은 기후변화와 분쟁이 동시에 주민의 삶을 흔드는 17개 취약국 중 하나다.

그런데 IRC 분석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는 전 세계 인구의 10.5%가 살지만 연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반면 전 세계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의 71%, 최근 3년간 자연재해 피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이들 국가에 집중돼 있다.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인천=임세준 기자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인천=임세준 기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1850~2019년 화석연료 사용과 산업에서 발생한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가운데 선진국이 차지한 비중은 57%다. 반면 최빈개도국이 차지한 비중은 0.4%에 그쳤다.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국가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고, 동시에 재난 피해를 줄일 사회 기반을 갖출 여력도 키웠다. 하지만 온실가스의 영향은 국경 안에 머물지 않고, 피해 역시 똑같이 나눠지지 않는다.

피해를 줄이는 데 필요한 돈조차 가장 취약한 곳에 충분히 흘러가지 않고 있다. IRC가 지난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기후·분쟁 취약 17개국은 2022년 개발도상국에 배정된 기후적응 재원의 12%만 받았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 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윤창빈 기자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 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윤창빈 기자

한국 역시 이 구조와 무관한 국가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연료 연소에 따른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6t으로 OECD 평균 7.8t보다 많았다.

특정 국가의 배출이 아프가니스탄의 특정 가뭄을 일으켰다고 연결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기후충격이 닥쳐도 이를 버틸 수 있는 여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선진국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야”

이 때문에 재난이 벌어진 뒤 지원하는 것보다 그 전에 대응해야 한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IRC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전역의 수천 가구에 현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원 뒤 조사에서는 주민들이 식량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 영양 등 각 가정에서 가장 급한 곳에 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갓 일대에서 트리슐리강과 타디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습. [AP]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갓 일대에서 트리슐리강과 타디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습. [AP]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된 실험은 아니지만 IRC와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나이지리아 홍수 취약지역 145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재난 전에 현금을 받은 가구가 홍수 뒤 지원받은 가구보다 식량을 미리 마련하고 가족과 가축을 대피시키는 등의 행동을 더 많이 했다. 끼니를 줄이거나 중요한 재산을 급히 처분하는 행동도 줄었다.

재난이 닥친 뒤에는 이미 가축을 팔거나 자녀를 학교에서 빼내고, 삶의 터전을 떠난 뒤일 수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충격이라면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지원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필요한 지원을 알고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보스턴은 약 1년 전 한 지역에 지원을 약속했다가 재원이 삭감돼 불과 몇 주 뒤 다시 주민들을 찾아가 “지원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해야 했던 일을 가장 힘든 기억으로 꼽았다.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압둘 하크(30)가 장남 나키불라(8)와 마을 주변 산을 바라보고 있다. 인근 강이 완전히 말라붙어 비가 오지 않으면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압둘 하크는 가축과 가족에게 필요한 물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생후 10개월 아들 샴술라는 영양실조를 겪어 IRC 이동진료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바드기스주 상에아타시 지역에서 압둘 하크(30)가 장남 나키불라(8)와 마을 주변 산을 바라보고 있다. 인근 강이 완전히 말라붙어 비가 오지 않으면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압둘 하크는 가축과 가족에게 필요한 물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생후 10개월 아들 샴술라는 영양실조를 겪어 IRC 이동진료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반대로 오래 기억에 남은 순간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서부 이슬람 칼라에서 IRC가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 기다리던 귀환민들을 위해 110채의 임시 거주시설을 마련했을 때였다. 한 아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와 깨끗한 물과 샤워시설, 화장실, 머물 공간을 둘러봤다.

그러고는 “와, 여기가 아프가니스탄이에요?”라고 말했다. 보스턴은 “처음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디딘 아이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나은 모습을 보고 놀라 한 말이었다”며 “그 모습이 지금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것도 거창하지 않았다. 보스턴은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주의 단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날이 왔으면 한다”며 “주민들이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모습 [게티이미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 [게티이미지]

마지막으로 한국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보스턴은 페르시아 시인 사디의 시구를 꺼냈다.

인간은 하나의 몸을 이루는 지체와 같으며, 모두 같은 본질과 영혼으로 창조됐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통받으면 다른 이들 역시 편안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인간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너라도 살아야 한다” 10살 아이를 ‘국경 브로커’ 손에…‘마른 하늘’이 생이별 불렀다 [지구,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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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10살 난 아들의 몸에 열이 끓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남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병원에 갈 돈이 없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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