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PC통신으로 ‘최불암 시리즈’
전하는 사람마다 달라진 ‘구전 유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63빌딩 옥상에서 최불암이 동료 배우 최주봉과 탁구를 치고 있었다. 최주봉이 세게 친 공이 옥상 밖으로 낙하. 하필이면 엘리베이터도 고장이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공을 주워 다시 올라온 최불암이 씩씩거리며 내뱉은 말. “야, 1대 0이야.” 199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우스개 ‘최불암 시리즈’의 한 토막이다.
이 이야기는 전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탁구 상대가 최주봉 대신 유인촌이기도 했고, 공을 날려 보낸 것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기도 했다. 어떤 판본에선 최불암이 공을 잡으려고 빌딩 아래로 뛰어내린다. 상황은 달라도 마지막 한마디는 같았다. “1대 0.”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세부사항이 달라지고 새 이야기가 덧붙는 과정은 구전 설화를 닮았다. 당시 막 확산하기 시작한 PC통신도 가세했다. 교실에서 떠돌던 이야기가 온라인 게시판에 쌓이고, 게시판에 올라온 이야기는 다시 사람들의 입을 거쳐 퍼져 나갔다. 최불암 시리즈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고 전한 이야기였다.
웃음의 주인공이 먼 길을 떠났다.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지난 29일 밤 10시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무대에 선 최불암은 MBC ‘수사반장’(1971~1989)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으로 반세기 가까이 안방을 지켰다. 무거운 배역을 도맡았지만, 대중은 고인을 근엄한 얼굴보다 웃는 얼굴로 기억한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터뜨리던 “파하~” 소리와 그의 이름을 딴 유머 시리즈 때문이다.
드라마 ‘전원일기’ 속 김 회장의 웃음소리 ‘파하~’엔 사실 숨겨진 이유가 있다. 호탕하게만 들리던 그 웃음은 사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웃기 위해 생겨난 웃음이다.
최불암은 2011년 2월 1일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서 웃음소리의 내력을 풀어놓았다. 김 회장은 홀어머니(정애란 분)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김 회장 부부의 옆방에 홀로 지냈고, 아내(김혜자 분)는 밝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까지 허허 하고 크게 웃으면 어머니가 외로울까봐 조심스레 웃으려다 보니 입을 막게 됐고 ‘파~’라는 웃음소리가 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틀어막은 입 사이로 새어 나온 숨이 ‘파’가 됐다는 에피소드다.
배역을 위해 참은 웃음은 배우의 버릇이 됐다. 2021년 6월 18일 방송된 MBC ‘다큐 플렉스-전원일기 2021’에서 옛 동료들을 다시 만난 최불암은 자신의 별명이 ‘파’라고 했다.
‘최불암 시리즈’에서 최불암은 순박하고 어수룩한 사람이다. 타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자기 시각으로 해석하고, 다소 엉뚱한 한마디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새로 지어낸 이야기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미 떠돌던 우스개의 주인공 자리에 최불암이 들어앉기도 했다. 점잖은 김 회장의 얼굴이 겹치자 흔한 우스개에 묘한 낙차가 더해지며 웃음은 배가됐다.
PC통신은 흩어져 떠돌던 ‘최불암 시리즈’를 한데 모아 두는 창고 구실을 했다. 게시판에 모인 이야기는 유머집으로 묶여 서점에 나왔고, 책은 학생들의 손을 거쳐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최불암이 이 우스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친구인 박동규 당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를 통해서였다. “학생들이 만든 네 이야기가 학교에서 떠도는데 너무 재미있다”는 전갈이었다. 출판사가 책을 내겠다고 하자 최불암은 대가를 받지 않고 허락했다. 2017년 10월 KBS 2TV ‘1 대 100’에 출연한 최불암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팍팍한 입시 위주의 공부 속에서 학생들이 유머를 가지고 한순간이라도 즐길 수 있도록 출판사에 무상으로 저작권을 허락했다.”
탁구 이야기와 함께 자주 소개되는 것이 ‘붕어빵 이야기’다. 붕어빵 장사를 하는 최불암에게 막내아들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민다. 아버지 직업을 뭐라고 적을지 머뭇거리는 아들에게 최불암은 “수산업이지 뭐야. 붕어를 만들잖아”라고 했다.
최불암은 우스개 속 자신을 몸소 연기하기도 했다. 1998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시리즈를 옮긴 콩트에 출연했고, 2004년에는 코미디 영화 ‘까불지마’의 주연을 맡았다. 제작과 감독을 겸한 오지명이 ‘최불암 시리즈’로 인기를 누리던 최불암에게 주연 자리를 내준 작품이다.
자신의 이름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막지 않고 오히려 판을 깔아 준 셈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올해 5월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 2부에서 “최불암은 한 시대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그가 자신을 개그 소재로 내던진 것”이라고 평했다.
병상에서도 웃음은 최불암의 얼굴이었다. 올해 6월 병실을 찾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틀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특유의 ‘파하’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셔서 무척 안심됐다”고 적었다. 최불암은 머잖아 퇴원하면 술 한잔하자고 청했고, 최 장관은 막걸리를 사달라고 답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어머니의 주점 ‘은성’ 이야기가 나오자 최불암은 환하게 웃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보다 한 달 앞서 MBC는 고인의 연기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다. 제목부터 ‘파하, 최불암입니다’였다. 재활에 전념하느라 최불암은 끝내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다. 대신 다큐를 준비하며 남긴 인사말을 MBC가 4월 20일 방송 소식과 함께 공개했다. 오래전부터 “연기자는 광대”라고 말해 온 배우의 인사다.
“오랜 시간 저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게 광대의 마음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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