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해 도심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의 분노가 ‘타이쿤’(Tycoonㆍ재계 거물)을 향하고 있다. 시위의 근본적 원인이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에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시위대의 칼끝이 마침내 부(富)를 독식하고 있는 홍콩판 ‘재벌’을 겨누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위 23일째를 맞은 홍콩 시민들은 정부뿐 아니라 재벌들을 향해 시위를 벌여나가고 있다. 부동산과 각종 기간산업을 장악한 재벌가문과 식민지 시절 성장한 대기업들이 주요 대상이다.

시위로 인해 보유자산 314억달러(약 33조5000억원)의 아시아 최고 갑부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 회장의 본사 사옥 앞 도로가 봉쇄됐으며, 정위퉁(郑裕彤) 일가가 소유한 홍콩 최대 보석업체 저우다푸(周大福) 매장의 3분의1이 잠정 휴업했다.

이는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는 경제와 재벌에 대한 부 쏠림 현상에 대한 젊은 세대와 중산층의 분노가 행정장관 선출안을 계기로 폭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웰치 컨설팅에 따르면 홍콩 억만장자 41명이 보유한 자산은 2039억달러(약 21조2555억원)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74.4%에 달한다. 경제에서 억만장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홍콩보다 높은 곳은 아프리카 독재국가 스와질란드 한 곳에 불과하다.

홍콩 상위 10%가 보유한 자산 비중도 2000년 65.6%에서 2008년 69.3%, 2014년 77.5%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홍콩 5개 기업이 민간 주택 시장의 70%를 독식, 부동산 가격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부추기는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대졸자들의 초임연봉은 지난 17년 간 19만8000홍콩달러(약 2719만원)로 1% 오르는 데 그쳐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 석학인 장피에르 리먼 홍콩대 초빙교수는 “홍콩은 불평등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많이 갖고 있으며 재벌은 그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타이쿤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타이쿤들이 홍콩 정부뿐 아니라 중국 본토의 특혜 아래 성장하고 친중 행정장관을 뽑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행정장관을 간접 선출해온 1200명의 후보추천위원회에 포함된 상당수가 재벌 또는 이들과 밀접한 관계인 이들이어서 재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2년 구성된 위원회에서도 리 회장과 리쇼키(李兆基) 헨더슨(恒基兆業) 부동산그룹 회장의 이름이 올라 이 같은 비판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 조셉 청 홍콩시립대 교수는 “타이쿤들이 정부의 도움으로 많은 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타이쿤들이 이번 시위에 대해 신중하지만 자제를 촉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놔 민심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일례로 리 회장은 지난 15일 홍콩 학생들의 ‘열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집에 돌아가라”고 당부했으며, 부동산금융업체 휠록의 피터 우 회장은 “시민들이 시위할 권리를 가졌다는 점에서 홍콩은 이미 승리했다”며 “더이상 시위를 계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00년대 아편 거래로 부를 축적한 케스윅 가문이 이끄는 호텔ㆍ유통업체 자딘매더슨도 “의사 표현 권리를 행사할 때는 다른 시민들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면서 자제를 강조했다.

홍콩 정부와 학생 측 대표가 오는 21일 대화에 돌입해 행정장관 후보추천위원회 개혁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데이비드 웹 전 홍콩 증권거래소 이사는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후보 선출 과정을 통제하기 위해 재벌과의 협력에 기대왔다”면서 “선출위원회 구성을 재벌에서 민주진영 중심으로 바꿀 리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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