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20대 후반의 직장인 이 모 씨는 평소 명치가 아프고 답답한 느낌이 지속됐지만 평소 자주 앓던 위염 증상인 줄 알고 별다른 처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배가 너무 아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이 씨는 병원을 찾았고 ‘급성 충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름부터가 오해인 질환이 있다. 오래전부터 누구나 익숙하게 불러온 탓에 이제와 본래 이름을 찾아 불러주기에도 어쩐지 어색해지는 일명 ‘맹장염’. 이 질환은 사실 급성충수염이라 불러야 옳다. 급성충수염에 대한 오해는 이름뿐이 아니다. 발병 원인과 부위, 진단, 치료에 이르기까지 떠도는 불량정보들이 많은 것은 매년 우리나라에서 10만 명 이상이 수술을 받을 만큼 흔한 질환인 탓일 수도 있다. 급성충수염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 몇 가지를 짚어보고 그에 대한 진실을 밝혀보자.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에 있다?
남자는 급성 충수염일 때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고 여자는 왼쪽 아랫배가 아프다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남녀의 충수 위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사실 충수는 남녀를 불문하고 오른쪽 아랫배에 위치해 있다. 선천적으로 신체구조가 바뀌어 맹장이 왼쪽에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음식을 먹으면, 식도와 위를 거쳐 소장과 대장을 차례로 지나면서 소화된다. 맹장은 소장에서 대장으로 옮겨가는 대장의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5~6cm 정도로 짧다. 충수는 맹장 끝에 붙어 있는 약 10cm 길이의 돌기이며, 충수염은 이곳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오른쪽 아랫배 통증은 급성충수염의 공식?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면 일단 급성 충수염부터 의심하게 된다. 과연 급성 충수염 증상은 오른쪽 아랫배에서만 나타날까? 답은 NO! 급성충수염의 징표는 우리가 아는 의학상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오른쪽 윗배나 배꼽 부위, 또는 배 전체가 아플 수도 있으며, 혹은 변비나 급체처럼 특별히 증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급성충수염은 처음에는 체한 듯 윗배가 불편하고 오심이나 구토가 동반될 수도 있고 입맛이 떨어지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때문에 단순히 체한 줄만 알고 아픈 걸 참다가 결국 충수가 터져 복막염이 되어서야 응급실에 실려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처럼 증상이 애매한 경우가 전체 환자의 1/3 이상이며, 미국외학학회지 보고에 따르면 이런 애매한 증상 때문에 불필요한 수술을 하는 경우가 6~16%나 된다고 한다.
급성충수염으로 오인하기 쉬운 질환으로 게실염, 급성위장염, 장염, 변비 외에 소아의 장간막 임파선염과 요관 결석, 노인들의 경우 맹장에 생기는 대장암 등이 있다. 이 질환들은 아픈 부위가 배꼽 주위나 오른쪽 아랫배로 충수염과 구별이 어렵다. 여성들은 우측 하복부가 뜨끔뜨끔 아프고 당길 때는 자궁 또는 난소 종양, 근육통, 배란통을 의심해볼 수 있다.
충수염 진단시 가장 중요한 것이 충수가 위치한 부분을 눌렀을 때 아픈 증상이다. 그 부위를 맥버니 포인트(McBurney point)라고 하며, 정확한 위치는 배꼽과 골반 앞부분의 가장 튀어나온 곳을 연결한 가상의 선에서 바깥쪽 1/3 지점이다.
▶머리카락이나 수박씨 많이 먹으면 걸린다? 머리카락이나 수박씨를 삼키면 맹장이 막혀 염증이 생긴다는 설을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낭설이다. 머리카락이나 소화가 안 되는 씨앗, 껌, 작은 돌 등의 이물질은 음식물 찌꺼기에 섞여 3일 내에 대변으로 배출이 된다.
급성충수염은 어떤 원인에 의해 충수 내부가 막혀서 부어오르고 혈액순환이 안돼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원인으로는 세균감염이 대부분이다. 소아에서의 충수염은 점막하 임파조직이 지나치게 증식하여 충수돌기가 폐쇄되어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성인에서도 작은 대변덩어리에 의해 입구가 막혀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충수 임파조직의 과다한 증식은 급성 기관지염, 홍역, 세균성 이질 등에 의해 전신적인 임파조직 증식의 일환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 이물질이나 기생충 또는 종양에 의해서 충수가 폐쇄되어 충수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흔하고 간단하니까 수술 축에도 못 낀다?
지인이 입원을 해서 문병을 갔더니 급성충수염 때문이라고 하면, 문병 온 사람도 입원한 사람도 조금씩 멋쩍은 풍경이 연출된다. 그만큼 환자들에게는‘별 거 아닌 수술’로 인식되어 있지만, 잘못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충수제거술은 가장 흔하고 간단한 수술이기는 하지만, 충수염 자체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애매하기 때문에 진단이 어려워 의사들에게조차 골칫덩어리로 통한다.
급성 충수염은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지속된 염증으로 충수의 벽이 손상되어 천공을 일으킨다. 충수가 터지면(천공성 충수염) 주변에 고름이 고여 농양이 되거나, 뱃속 전체로 고름이 퍼져 복막염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천공성 충수염의 경우에는 수술이 매우 복잡해지고 회복 과정도 매우 힘들어지며,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냥 떼버리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충수가 없어도 우리 몸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충수는 일종의 흔적기관이다. 우리 몸에는 귀를 움직이는 이각근, 꼬리가 붙어있던 꼬리뼈 등과 같이 우리 인류가 진화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여 흔적만 남아있는 기관이 몇 개 있는데, 충수 또한 그중 하나이다. 충수 내에는 수많은 임파조직이 있어서 어느 정도 면역기능을 담당하기는 하지만, 임파조직은 다른 기관에도 있고, 충수는 오히려 그 임파조직의 비대로 인하여 충수염이 잘 발생하기 때문에 굳이 역할이라고까지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맹장도 대장의 일부로서의 기능 외에는 특별한 역할이 없다. 초식동물에서는 이 맹장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섭취한 먹이가 오래 머무르며 인접한 대장(결장)을 왕복하게 하면서 미생물에 의한 발효 및 소화작용이 충분히 진행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사람의 소화과정에는 미생물의 도움이 필요 없기 때문에 맹장이나 충수의 특별한 역할은 없다.
따라서 충수절제술 후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합병증을 제외하고, 충수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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