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의 딜레마
5년간 살포한 10조달러 주식 · 부동산으로만 몰려 美 등 물가목표치 밑돌아 실물경기 부양엔 역부족
소비 · 고용 부진 장기화땐 또 양적완화 재개 ‘악순환’
세계 경제가 ‘양적 완화(QE) 딜레마’에 빠졌다. 중앙은행이 채권 매입과 초저금리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 정책에 나섰지만, 정작 소비와 고용 성장의 불씨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G7(주요 7개국) 중앙은행이 살포한 10조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유동성이 실물 경기로 흘러들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며 ‘자산 버블’ 논란만 키우고 있다.
지난 2008년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테이퍼링(양적 완화 단계 축소)에 착수하며 ‘긴축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뜩이나 부진한 소비ㆍ고용 시장이 출구 전략으로 더 위축되고, 이 때문에 회복 조짐을 보이던 경기마저 ‘더블딥’에 빠질 경우 또다시 중앙은행이 QE를 재개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소비자물가의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디플레이션’이 현대 경제를 정의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Fed가 경기 회복을 위해 3조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했으나 미국 물가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Fed가 금리 인하를 시작한 2008년 연율 2.3%를 기록한 뒤 2009년 1.7%, 2010년 1.0%로 뒷걸음질쳤다. 2011년과 2012년에는 1.7%와 2.1%로 반등하는 듯했으나 올해 11월 현재 1.7%로 다시 주저앉았다. Fed가 애초 테이퍼링의 선제 조건으로 내건 장기 인플레이션 목표치 2.0%를 여전히 밑돌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에선 고용 부진이 경제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실업수당 신규 청구 건수는 37만9000건으로 집계돼 전달 36만9000건은 물론 시장 전망 33만4000건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지난 3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 같은 문제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처럼 대대적 양적 완화를 단행하고 있는 일본과 유럽에서도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일본의 근원 CPI(식품ㆍ에너지 가격 제외)는 2008년 10월 이래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다 10월에야 가까스로 연율 0.3% 상승을 기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도 CPI는 10월 0.7%, 11월 0.9%로 2개월 연속 0%대 성장에 머물러 있다. 내년부터 유로존 회원국이 되는 라트비아(-0.4%)를 비롯해 그리스(-2.9%)와 불가리아(-1.5%)는 디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다.
반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에는 돈이 몰리며 ‘나 홀로 활황’을 보이고 있다. 중앙은행이 살포한 천문학적인 돈이 거품 논란이 일 정도로 자산 시장으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시장에선 19일에도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만6179.08에 거래를 마감, 최고 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웠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주택가격지수는 올 2분기 126.4로, 2008년 4분기 이후 최고치에 올라 있다.
이에 대해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경제논설위원은 최근 “전무후무한 양적 완화에도 물가는 안 오르고 성장은 둔화돼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전철을 밟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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