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가르보보다 더 많은 팬레터를 받았고,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전 대통령보다 인기 있었던 전설적인 아역스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할리우드의 아역스타였던 여배우 셜리 템플 블랙이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셜리 템플 블랙이 10일 밤(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11일 일제히 보도했다.

셜리 템플은 1932년 4살의 나이로 데뷔했으며 1930년대 중후반 미국의 대공황 시절의 극장가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노래와 탭댄스를 하는 앙증맞은 금발의 외모와 어른보다 뛰어난 기지로 시련을 극복하는 밝고 낙천적인 캐릭터로 당대 절망에 빠진 미국 국민들의 희망이 됐다. 6세 때에 미국 아카데미상 아역부문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셜리 템플의 인기는 그레타 가르보보다 더 많은 팬레터를 받고, 루즈벨트 대통령보다 더 많은 사진기자들을 불러모을 정도였다. ‘스탠드 업 앤 치어’ ‘브라이트 아이즈’ ‘캡틴 재뉴어리’ ‘수전나 오브 마운티즈’ 등이 1934년부터 1939년까지의 대표작이다. 특히 이 시기에 출연한 ‘리틀 미스 메이커’에서는 아버지의 빚 때문에 마권업자를 따라나서게 된 아이로 등장해 어른보다 지혜롭고 성숙한 모습으로 극을 이끌며 독보적인 아역상을 구축하며 미국 국민들에게 낙관주의를 전했다. 당시 출연한 수십편의 영화에서 셜리 템플은 대개 고아로 등장하거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소녀 역을 맡았지만 밝고 씩씩하게 고난을 극복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셜리 템플은 자서전 ‘아역 스타’에서 “대공황기의 국민들은 그들을 북돋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린 틴틴같은 귀여운 개와 그리고 어린 소녀에게 푹 빠졌다”고 썼다.

셜리 템플은 10세 때까지 클라크 게이블과 빙 크로스비, 로버트 테일러 등 쟁쟁한 성인 스타들을 제치고 미국 극장가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보증수표’였다. 당시 출시된 셜리 템플 인형은 10여년간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인형이 됐으며 지금도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설리 템플의 수입은 사춘기전까지 300만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10대 들어 인기가 서서히 하락하자 셜리 템플은 22살에 전격 은퇴했으며, 1950년 찰스 앨든 블랙과 결혼한 후 공화당 정치 자금 후원가로 변신했다. 선거유세를 도운 덕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당선된 후 유엔 미국대표에 지명됐고, 1970년대에서 1989년 사이에는 가나와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도 역임했다. 1972년에는 당시로선 흔치 않게 유방암 투병과 절제 수술 사실을 공개하며 병원에서 가진 기자회에선 “유방암 때문에 공포에 떨며 집안에 은거해서는 안 된다”며 여성들에게 촉구했다.

셜리 템플은 소녀 시절에는 가장 사랑받는 아역 스타였으며, 성인이 되선 존경받는 여성이자 정치인으로서 미국민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