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발생한 주한미군 탄저균 배달사고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충격적인 내용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미군 쪽의 진실 은폐 기도다. 미군은 사건 발생 직후 탄저균 실험이 처음이라고 했으나 그 샘플은 2009년부터 서울 용산 기지에 15 차례나 더 배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측은 이에 대해 “당시 주한미군의 해명은 오산기지에서 수행한 탄저균 샘플 실험으로는 그 때 사례가 처음이라는 뜻이었다”고 했다.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나 둘러대는 변명이다 보니 궁색하기 짝이 없다. 합동 실무단 조사 결과 탄저균이 오산기지로 배달됐을 때 페스트균 표본(1㎖)도 함께 온 사실도 밝혀졌다.주한미군은 그간 페스트균 반입 사실을 쉬쉬했었다.

주한미군은 2013년부터 생물 탐지·분석·식별·조기경보를 위한 주피터(JUPITER) 프로그램을 가동해왔으며 이를 위해 총 16차례 탄저균 및 페스트균을 용산 및 오산기지로 반입해왔다고 한다. 북한의 생화학무기가 5000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생물학전 대비 탄저균 실험 등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해도 1000만 시민이 밀집돼 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위험천만한 생물 실험이 실시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될 수 없다. 탄저균과 페스트균의 치사율은 각각 95%, 93%다. 탄저균 100㎏이면 3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실험이 우리나라 땅에서 계속 이뤄지려면 한미 당국이 공동으로 안전장치를 검증한 후 실시돼야 마땅하다.

한·미는 17일 열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에 주한 미군이 생물학 샘플을 반입할 때 우리 정부에 발송·수신 기관, 샘플 종류, 용도, 양, 운송 방법 등을 통보하고 필요할 때 공동평가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합의권고안을 제출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조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샘플의 반입·취급·처리뿐만 아니라 제독·폐기 전 과정에 걸쳐 이중삼중의 한·미 공동 감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주피터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투명하고 적법한 정보 공유 체제가 확립되지 않으면 생물무기 실험에 대한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수 밖에 없다.

불신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심각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13년 전 반미감정을 들끓게 했던 ‘효순이ㆍ 미순이 사건’ 도 미국측의 무성의한 초기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한미 동맹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우방에 대한 예의와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