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저녁 7시. 공연 한 시간을 앞두고 극장 매표소 앞 대기 행렬이 줄을 이었다. 칼바람 부는 12월, 대학로 거리는 한산했지만 연극 ‘에쿠우스’ 공연장 앞 열기만큼은 뜨거웠다.
무려 40년이다. 에쿠우스<사진>는 1975년 한국 초연 이후 40년 동안 무대에 올려졌지만, 매회 객석은 꽉꽉 들어찼고, 관객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이유는 단순하다. 탄탄한 플롯와 극적 전개, 주인공의 내밀한 심리묘사와 스펙타클한 볼거리가 한 데 어우러진 이 연극이 동서고금 인간 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쿠우스의 줄거리는 이렇다. 17세 소년 알런이 말(馬)의 눈을 찌른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헤스터 판사는 알런을 감옥 대신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에게 보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와, TV 보는 대신 책 읽기를 강요하는 구식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왜곡된 사랑에 짓눌려 온 알런. 다이사트는 이러한 알런과 유대를 형성하며 사건의 전말을 풀어간다. 그는 알런이 신처럼 떠받들었던, 말로 형상화 한 ‘에쿠우스’에 대해 알아가며 무기력했던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알런에게 묘한 동경심마저 갖게 된다.
연극 에쿠우스의 이야기는 일부 관객들에겐 영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그렇다.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욕망이 거세된 현대인들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묻고, 잃어버린 원시 생명력의 회복을 집요하게 추궁하지만, 극 중 여성의 존재는 ‘도구’이자 매개체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갈등의 원인(남편인 다이사트에게 ‘수년동안 입 한번 맞춰주지 않으면서 벽난로 앞에 고고하게 앉아 고아들을 돌보는’ 잘난 아내)이거나,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기독교를 맹신하며 아들 알런에게 낡아빠진 성경 구절을 강요하는 극성스런 엄마 도라), 갈등을 극대화하는 원인(알런에게 성적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결국 끔찍한 결말에 이르게 하는 여자친구 질)일 뿐이다.
어쨌거나 이 연극은 매력적이다. 2시간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아맨다. 특히 너제트를 포함, 7마리의 말이 등장하는 대목은 관객들의 집중도를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말로 분한 배우들은 늑골을 활처럼 휜 채 ‘말근육’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무용수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실제 말이 호흡하듯 ‘푸루루루’ 뜨거운 입김을 뱉어낸다. 그 중에서도 백마 너제트의 몸짓이 섬세하다. 때론 암말, 때론 숫말이 돼 소년 알런과 성적, 정신적 교감을 이룬다.
연극 에쿠우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고뇌하는 다이사트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어체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연극은 생각만큼 난해하거나 전위적이지 않다. 다만 대사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극 중 완벽한 몰입을 원한다면 전체적인 줄거리는 미리 파악하고 가는 것이 좋다.
에쿠우스는 발화하지 못한 중년의 욕망을 소년의 그것을 통해 이야기한다. 아직 가슴 안에 펄떡이는 야생마가 살아있는, 그대 중년에게 권한다. 김아미 기자/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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