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상) : 다이어트하고, 카페인을 들지 않으며, 거세된 뱀파이어들 (Twilight : vampires allégés, décaféinés, émasculés)

‘헝거’여 안녕, 반갑다 ‘트와일라잇’! 자신감이 넘치는 살인자에 이어 성적 좌절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청소년들이 현재 스크린을 휩쓸고 있다. 그들은 “강박적으로 물어뜯는 것은 해악”이라면서 기존의 뱀파이어 모습을 거부한다. 약 20년 전부터 뱀파이어 영화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장-자크 베넥스(Jean-Jacques Beinex) 감독이 이런 현상을 분석했다.

현실에서는 몸 전체를 베일로 감싸거나 자신의 딸에게 할례(割禮)를 받게 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 기존의 뱀파이어와 다르다. 그들은 인간과 근거리 접촉을 피한다. 신선한 육체의 달콤한 향기가 금기를 깨게 만들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빨아들이지 말라”가 그들의 좌우명이다. ‘트와일라잇’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희생에 열정적이다.

어둡고 금욕적인 분위기로 산 자 사이를 누비며, 끔찍한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스스로에게 금한다. 그들은 웃지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 또 희생을 통해 전형적인 유대-기독교적인 사고를 끌어낸다. 이런 방식은 그들을 우월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다른 뱀파이어들이 피에 굶주린 괴물들, 오직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야수에 지나지 않는 반면 ‘트와일라잇’ 주인공들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고상하게 괴로워한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천박한 방식인가. 절망 속에서 원무를 그리며 도는 것이 훨씬 더 우아하지 않은가.

한 여성 모르몬교도가 저술한 책인 ‘금지된 욕망의 사가’(‘트와일라잇(황혼)’의 원제)를 영화화한 이 시리즈는 송곳니 끝을 잘라낸 뱀파이어들을 그려낸 영화다. 그들은 “결혼 전에는 안돼”라는 생각을 옹호하는 존재들이다.

‘트와일라잇’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포옹하는 즐거움을 거부하면서 시간을 소일한다. 포옹으로 인해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욕망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첫 번째 영화(‘트와일라잇’, 프랑스어 부제는 ‘제1부 : 매혹’) 속에서 두 명의 연인은 단지 단정한 애무에 만족한다. 두 번째 영화(‘뉴문’, 프랑스어 부제는 ‘제2부 : 유혹’) 속에서 그들은 서로 헤어진다. 벨라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화(‘이클립스’, 프랑스어 부제는 ‘제3부 : 망설임’) 속에선 서로 결혼을 요구하며, 피를 나누는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겨우 갖게 된다.

‘트와일라잇’이 모종의 종교적 광신주의를 감추고 있는 건 아닌지 여주인공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영화가 금욕에 대해서도, 순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서 대신 “낭만주의”라는 표현을 했다. 이는 틀린 표현이다.

19세기 전기낭만주의 작가들이 최초의 뱀파이어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작가들은 ‘저주’가 행사하는 혼란스러운 유혹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피조물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장-자크 베넥스는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닌 뱀파이어는 신의 부재에 대한 공포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뱀파이어는 지상에 버려져 방황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홀로 책임집니다”고 말한다.

자유라는 불온한 메시지를 보유한 뱀파이어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 이빨로 삶을 물어뜯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섹스동물에 의해 전염되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가 초인적인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당신 자신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뱀파이어는 이야기한다.

이빨을 내밀고, 힘에 의해 지배당할 것. 당신을 통제하고 억제해야 한다고, 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쾌락을 거부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항상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우리들의 갈증뿐인 것이다.

장-자크 베넥스는 명료하게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 준다. -영화 ‘트와일라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황혼(Twilight)’의 시대에 ‘빛(light)’을 그리고 있는 뱀파이어들에 대해 놀랄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에는 감미료가 차고 넘치고, 뱀파이어들 역시 이런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중함, 보통사람들에 의한 지배, 팔고 체험하는 예술로까지 고양된 ‘부드러움’의 원칙이 보여주는 증상이지요.

우리가 성적 환상에 줄질을 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뱀파이어의 이빨에 줄질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본능을 억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고, 우리가 완전히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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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되기를 부추기고 명령합니다. 뱀파이어들은 좋은 모델이 아닙니다. 규범에 맞추어 그려내려 해도 들어맞지 않죠. 그런 의미에서 짓궂은 장난 이상의 것을 의미하기가 힘들지요.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상자 속에 들어가게 하려는 의지에 따라 이빨과 날개를 잘라내 버린 뱀파이어가 포장하기에는 더 실용적입니다. 15일이 지나 사람들은 제품을 원래 박스 속에 다시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물어뜯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피를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전염의 우려가 없다는 얘기지요. 뱀파이어 이상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은 잡거(雜居), 접촉, 짝짓기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 동요하는 심오한 본성에 재갈을 물릴 수가 없기에, 허약해지기는 했지만 들끓고 있는 욕망을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습니다.

(이미지는 영화 ‘트와일라잇’)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