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힘든 계절인 것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 인 듯하다. 한해살이 풀은 씨앗을 남기고 사라져버렸고, 여러해살이 풀이라 하더라도 꽁꽁 얼어버릴 겨울을 견디기 어려우니 드러나는 땅 위의 부분은 이미 말랐고, 땅 속에 뿌리가 살아있다가 새봄에 새눈을 틔운다.
좀더 의연하고 강건한 나무도 겨울이 무섭기는 할 터다. 생장을 멈추며 엽록소가 파괴돼 초록잎은 단풍이 들었고, 그 잎마저 잎자루에 떨켜가 생성돼 낙엽이 되어 흩어졌다. 급기야 이제는 고스란히 가지를 드러낸 채 그렇게 서있다. 강한 듯 독야청청 서있는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상록수도 얼어버릴 수 있는 수분의 이동은 멈추고 잎엔 추위를 막는 왁스층이 두꺼워진다. 연약한 모든 부분은 모두 떨구거나 싸매고 감추며 닥쳐올 추위를 진장하며 기다린다.
이 즈음 나무를 바라보면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띈다. 화려한 꽃이나 무성한 잎에 가려졌던 가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나무는 수형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나무의 굵은 줄기나 잔가지 하나하나는 그 모든 것이 이웃 나무와 햇볕을 경쟁하며 때로는 휘어지고, 때로는 키를 키우고 살아온 지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나무의 삶이 드러나는 순간인 듯 싶다. 겨울 숲에 가서 겨울 나무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서늘하고도 애잔한 마음은 그 나무의 노고와 새 삶의 희비가 함께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즈음 나무 구경은 아는 이만 보는 즐거움도 있다. 나무껍질이 희고 벗겨지는 자작나무, 회색 나무껍질이 너덜거리는 물박달나무, 반짝이는 암갈색 수피에 옆으로 튼 듯한 줄이 가 있으면 그것은 벚나무이며, 회백색 줄기에 다이아몬드 같은 무늬가 가득하면 은사시나무다. 줄기만 보고도 알아보는 나무는 얼마나 반가운가.
가지의 가장 끝 한 마디가 바로 1년생 가지인 소지인데, 그것만 잘 들여다 보아도 잎은 없지만 잎이 달렸던 흔적, 한 해 동안 양분과 수분을 이동시켰던 관속의 흔적, 나무 수피가 숨쉬는 통기조직 같은 것이 모두 보인다. 그래서 떨어진 나뭇잎이 마주 달렸는지, 어긋나게 달렸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지엔 동아(冬芽), 즉 겨울눈이 발달하는데 바로 내년에 새 줄기가 되고, 새 잎이 되고, 꽃이 될 어리고 연약한 것이 모두 이 속에 숨어 있다. 겨울눈은 백목련처럼 털코트 같은 껍질 혹은 물푸레나무처럼 가죽코트 같은 껍질 등 나무 각각의 특징에 따라 둘러싸여 보호되는데, 그 각각이 얼마나 개성있고 멋진 모습인지 모른다.
줄기 가장 끝에 있는 눈이 정아(頂芽)인데, 그 옆에는 상처를 입으면 이를 대신할 측아(側芽)도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일은 겨울 동안 멈추지 않고 그 속에서 꽃눈을 열심히 분화시킨 나무는 가장 먼저 새 봄을 여는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언제나 겨울이 존재한다. 계절적 겨울도 있고, 삶의 겨울도 있다. 그 어려운 시기를 열심히 대비하고, 그 속에서 열심히 준비해야 비로소 찬란한 새 봄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겨울 나무를 보며 기억해주길 바란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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