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을 수백억원 가진 이른바 수퍼리치(초고액 자산가)들이 자금을 대고, 이들과 결탁한 자산운용사 임원, 금융사 지점장 등 금융 전문가들이 주가를 조작해 40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올렸다가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이번 사건은 이재명 대통령이 6월 취임 직후 “패가망신토록 하겠다”며 주가조작에 대한 엄벌 의사를 내비친 뒤 꾸려진 ‘주가조작근절 합동대응단’(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합동)이 적발한 첫 사건이라는 점에서 1400만 개미투자자들의 주목도가 높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꿏은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비뚤어진 탐욕을 일벌백계의 준엄함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번 주가조작에는 종합병원 이사장, 대형학원 운영자 등 재력가들이 ‘전주(錢主)’로 나섰다. 이들은 개인·회사 자금 등으로 1000억원의 투자금을 마련했고, 유명 사모펀드 임원 등 전현직 금융 전문가들이 이 자금을 이용해 코스피 상장사 DI동일(옛 동일방직)이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출렁이는 사이에 고가매수나 가장매매, 허수주문 등으로 주가를 띄웠다. 이후 주가가 2배 수준으로 오르면 팔아 치워 지금까지 실제로 거둔 시세 차익은 약 230억원이고, 계좌지급 정지 조치에 따른 미실현 차익까지 따지면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특히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려고 계좌를 수십개 이용해 주식을 매매했고, 주문 IP(인터넷 식별 번호)를 조작하는 수법도 썼다. 이들의 주가조작은 작년 초부터 최근까지 약 1년 9개월 동안 거의 매일 진행됐다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합동대응단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당이득의 최대 2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즉시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등 ‘원스트라이크 아웃’의 본보기가 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엄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신속한 수사·조사다.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탄 지난 1년 9개월간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주가조작에 이용당했다. 하루 평균 10억주를 넘는 국내 주식 거래의 감시 인력이 100여명뿐인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고도화하는 주가조작 세력과 맞서기 어렵다. 야심 차게 출범한 합동대응단도 32명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금융산업규제국(FINRA)은 각각 수천명 규모의 전담 인력을 두고 있다. 시세조종 등이 발생한 지 수주일 만에 잡아내는 사례가 많은 배경이다.

사후 패가망신은 투자자들에겐 자칫 사후약방문격이 될 수 있다. 사전 감시망을 더욱 촘촘히 해서 자본시장의 근간인 투자자 신뢰를 좀먹는 주가조작 범죄를 조기에 뿌리뽑아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첫걸음은 강력한 투자자 보호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