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유지·보수·운영 총괄…제조업 멈추지 않는 동맥, MRO
아이마켓코리아, 단순 구매대행 한계 넘어 K-제조업 맞춤형 솔루션으로
美 텍사스 테일러 거점에 인허가·조달·물류 원스톱 지원
국내 유일 MRO 상장사…책임경영 앞세워 독자생존 구축
안연케어·비투엘물류·밸류포인트 M&A로 수직계열화 완성
3조원대 견고한 매출…올 상반기 영업이익 110% 급증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매일 소비하는 자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한 반도체 및 첨단 제조 공장의 생산 라인에 들어가는 작은 볼트와 너트, 베어링, 배관 파이프부터 클린룸 작업자가 착용하는 방진복과 특수 장갑, 사무실의 컴퓨터와 서버, 사소한 복사용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만 수백만 가지에 달한다.
이처럼 완제품 생산에 직접 투입되는 핵심 원자재를 제외하고, 공장과 설비의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운영(Operations)에 소요되는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통칭해 산업계에서는 ‘MRO(소모성 자재)’라고 부른다.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MRO는 제조업과 첨단 산업의 심장을 멈추지 않게 하는 핵심 혈관이다. 필수 부품 하나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수조 원이 투입된 공장 라인이 멈춰 서고, 작업자의 안전용품이 떨어지면 사업장 전체가 셧다운 위험에 직면한다.
하지만 수만 가지가 넘는 자재를 개별 기업이 일일이 공급사를 찾아 계약하고 검수하는 것은 막대한 행정력 낭비와 불필요한 거래 비용을 초래한다. 게다가 자재를 개별적으로 구매할 경우,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려워 단가를 낮추기도 어렵다. 이를 한곳에서 도맡아 해결하는 이른바 ‘기업의 특급 집사’을 자처한 곳이 바로 산업자재 구매 서비스 전문기업 아이마켓코리아다.
아이마켓코리아의 정체성은 ‘You Imagine, We Supply(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공급합니다)’라는 슬로건에 온전히 집약돼 있다. 고객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제품 개발과 핵심 사업 전략에만 집중하면, 이에 수반되는 원부자재와 소모성 자재의 탐색, 최적 단가 협상, 품질 검수, 납기 관리, 물류 배송에 이르는 모든 물리적 실행을 기업을 대신해 완벽하게 조달해 준다는 약속이다.
축구장 120개 ‘美 텍사스 테일러 GTP’…K-제조업 ‘베이스캠프’ 짓는다
이 ‘B2B 올라운더’가 최근 글로벌 산업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승부처는 뜻밖에도 미국 텍사스 한복판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일대 약 26만평(86만㎡) 부지에서는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을 위한 첫 번째 대규모 산업단지인 ‘그래디언트 테크놀로지 파크(Gradiant Technology Park)’ 조성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축구장 120여개를 합쳐놓은 매머드급 규모로, 산업자재를 유통하던 회사가 해외 현지 생산기지 인프라 전체를 조성하는 거대한 영토 확장에 나선 것이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신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322억달러로 전년 대비 49.5% 급증했으며, 이 중 제조업이 52.5%를 차지했다. 텍사스는 법인세가 없고 유연한 규제 환경과 풍부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미국 내 투자 유치 2위의 첨단 제조 허브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국내 중소·중견 기업에 미국 생산기지 구축은 결코 ‘공장 부지 매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낯선 현지 인허가와 천문학적인 기초 공사비, 전력과 용수 인프라 확보, 자재 조달망 부재와 물류 병목 현상은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다.
그래디언트 테크놀로지 파크는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했다. 삼성전자 테일러 반도체 팹과 차로 10분 거리(약 8㎞),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서 약 40㎞,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약 55㎞ 떨어진 요충지에 자리 잡은 그래디언트 테크놀로지 파크는 인허가와 관공서 행정 지원, 법무·회계 컨설팅, 전력과 상하수도 등 기초 유틸리티 인프라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기업별 맞춤형 시설(Build-to-Suit)과 클린룸 등 공용 생산 시설을 함께 구축해 기업들의 초기 매몰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여기에 회사의 핵심 본업인 MRO 자재 현지 조달과 물류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엮었다. 한국 공장에서 생산된 부품이 국제운송망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테일러 현지 창고에 입고되고, 아이마켓코리아의 시스템을 통해 입주 기업 공장 라인으로 곧장 공급되는 완벽한 ‘엔드 투 엔드(End-to-End)’ 공급망을 제공하는 구조다.
이미 글로벌 물류기업 ‘하나로 원 웨이(HOW)’가 운송 동선과 창고 효율성을 높게 평가해 입주 협약을 체결했으며, 국내 첨단 장비·부품 협력사들의 진출 타진도 잇따르고 있다. 전체 26만평 중 9만평 규모의 1단계 구역은 첨단 하이테크 기업 입주용 SPEC 빌딩을 중심으로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2031년까지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완공할 방침이다.
26년차 ‘기업의 특급 집사’…국내 유일 ‘MRO 상장사’의 저력
국내 중소 협력사들이 해외 진출 시 겪는 최대 난제들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이 같은 ‘인프라 풀스택 디벨로퍼’ 모델은 하루아침에 급조된 것이 아니다. 지난 2000년 12월 설립 이후 26년 동안 산업계 최전선에서 공급망을 조율해 온 뚝심과 업력이 바탕이 됐다.
기업 간 전자상거래(B2B) 태동기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공동 출자로 닻을 올린 회사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전문 구매대행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공급망의 디지털화와 대량 구매를 통한 원가 절감, 프로세스 표준화는 만성적인 비효율에 허덕이던 국내 제조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비삼성 고객사로 영역을 넓혀가던 아이마켓코리아는 2010년 7월 국내 구매대행사 중 최초로 유가증권시장(KOSPI)에 당당히 상장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 MRO 계열사들이 규제의 장벽에 부딪혀 사업을 축소하거나 사모펀드(PEF) 산하로 매각된 것과 달리, 단독 상장사 지위를 확보하며 자본시장의 투명한 검증을 통과한 곳은 아이마켓코리아가 유일하다.
2011년 말 인터파크 컨소시엄에 인수되며 주인이 바뀐 것은 회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적 변곡점이 됐다. 지배기업인 그래디언트(43.1%)의 확고한 책임경영 체제 아래 독립성을 확보하면서도, 지분을 남겨둔 삼성 주요 계열사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안정을 꾀했다. 모그룹의 내부 거래에만 안주하던 여타 MRO 기업들과 달리, 주주 구성과 사업 구조 양면에서 독자 생존의 면역력을 기른 셈이다.
3조원대 견고한 캐시카우…올 상반기 영업익 110% ‘V자 턴어라운드’
이러한 26년의 업력은 연간 수조 원대 거래를 일으키는 압도적인 외형으로 입증된다. 회사는 540만개에 달하는 방대한 취급 품목과 4만7000여개에 이르는 협력 공급사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탄탄한 현금흐름을 창출해 왔다. 바로 이 3조원대 캐시카우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 산단과 같은 과감한 글로벌 인프라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던 든든한 젖줄이다.
연결 기준 연간 매출액은 2023년 3조4256억원, 2024년 3조3183억원, 2025년 3조544억원을 기록하며 3조원대 외형을 굳건히 수성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둔화와 전방 산업의 설비 투자 축소 여파로 일시적인 실적 정체를 겪었으나, 올해 들어 가파른 반등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이마켓코리아의 2026년 상반기 연결 기준 누적 매출액은 1조85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8% 증가했다. 특히 수익성 지표의 개선세가 두드러진다. 올 상반기 연결 영업이익은 3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10.8% 급증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 역시 318억원으로 57.1% 늘어났다.
상반기 거둔 영업이익(343억원)만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203억원) 전체를 70% 가까이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국내외 첨단 반도체 설비 투자 재개에 따른 사급자재 및 MRO 물량 회복과 함께, 고수익 사업 포트폴리오의 실적 기여가 본격화된 결과다.
다른 MRO와 길을 달리하다…포트폴리오 ‘삼각 편대’ 구축
국내 대형 MRO 기업들은 통상 1~2%대 영업이익률이라는 구조적 박리다매의 늪에 갇혀 있다. 단순히 물건을 떼어다 납품하고 유통 마진을 취하는 중개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외형 성장이 정체되고 수익성 방어도 위태로워진다.
아이마켓코리아가 선택한 돌파구는 명확했다. 기존 사업의 안정적 현금흐름(캐시카우)을 발판 삼아, 해외 직접 진출을 돕는 ‘K-산업단지 인프라 개발’이라는 차세대 신성장동력을 장착하고, 과감한 M&A로 ‘전문 유통·물류·마케팅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는 ‘삼각 편대’ 전략이다.
첫 번째 축인 기존 캐시카우는 전문성과 물류 인프라의 깊이를 더했다. 사내에 120여명의 국제공인 구매전문가(CPSM)를 포진시켜 고객사의 구매 체질을 진단하고, 경기 화성에 연면적 2만평 규모의 업계 최대 단일 물류센터인 동탄HUB를 비롯해 전국 주요 거점을 가동해 당일 출하 체제를 완비했다. 연간 수천억 원대의 건자재와 IT 하드웨어 전문 유통까지 내재화해 유통 플랫폼으로서의 체급을 키웠다.
두 번째 축은 M&A를 통한 고수익·고기능 포트폴리오의 확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인수한 의약품 전문 유통기업 ‘안연케어’다. 대형 상급종합병원에 전문의약품과 첨단 의료용품을 직납하는 안연케어는 분기당 21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전사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알짜배기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 품에 안은 국제운송 전문기업 ‘비투엘물류’는 해상·항공 화물부터 통관, 복합 물류를 아우르며 회사의 사업 경계를 글로벌 공급망 전체로 넓혔다. 앞서 미국 테일러 GTP 산단에서 국내 기업의 원부자재를 현지 라인까지 원스톱으로 연결할 수 있는 물류 뒷배가 바로 이 비투엘물류의 직송 경쟁력에서 나온다.
여기에 2022년 인수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기업 ‘밸류포인트’는 전시·행사, 팝업스토어, 인테리어 등 오프라인 대면 마케팅(BTL) 영역에서 기업의 마케팅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하는 독보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 사무용품 도소매 전문 ‘큐브릿지’까지 통합하며 기업용 판촉물과 MRO를 잇는 B2B 마케팅 풀스택 역량을 완성했다.
‘자재 공급’ 넘어 ‘산업 인프라 디벨로퍼’로의 비상
기업 운영에 필요한 산업용 자재(MRO) 조달로 출발한 아이마켓코리아는 이제 제조업과 헬스케어, 글로벌 물류와 산업단지 개발을 아우르는 ‘K-산업 인프라의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완벽한 진화를 이뤄냈다.
김학재 아이마켓코리아 대표이사는 “그래디언트 테크놀로지 파크는 아이마켓코리아가 지난 20여 년간 축적해 온 구매·물류·공급망 역량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사업”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고객사와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사업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그래디언트 테크놀로지 파크를 교두보 삼아 글로벌 생산 벨트를 잇고, 베트남 푸토성 등 해외 국가산업단지 연계 프로젝트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회사의 기업가치는 단순 유통업의 잣대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디벨로퍼이자 확고한 올라운더로서 완전히 재평가받게 될 전망이다.
26년의 세월 동안 축적된 구매 노하우 위에 신성장 엔진을 얹은 아이마켓코리아의 상상은 이제 글로벌 산업 지도를 바꾸는 거대한 현실로 공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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