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28 위켄드

12m 황금 거상과 40곡 연대기 ‘수미상관’

우상 불태우고 인간 ‘에이블’ 드러낸 120분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만히 서서 손가락을 들어 올렸을 뿐이다. 5만4000명의 함성이 그 손끝을 따라 일제히 방향을 바꿨다. 각 잡힌 군무도, 화려한 게스트도 없었다. 8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위켄드(The Weeknd)는 목소리 하나로 광활한 스타디움을 지휘했다.

“보고 싶었어요. 한국!”

팝스타 위켄드가 7~8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8 위켄드’로 한국 관객과 만났다. 회당 5만4000명, 이틀간 10만8000명이 객석을 메웠다.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간 뒤 대형 아티스트 공연의 새 거점이 된 이곳의 스탠딩 구역엔 빈틈이 없었다.

주 무대엔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빼곡했다. 고대의 유적 같기도, 종말을 맞은 디스토피아의 폐허 같기도 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마 테일러와 함께 지금의 무대를 만든 디자이너 알렉산더 베셀리는 영국 디자인 전문지 월페이퍼 인터뷰에서 폐허와 고전 건축의 파편에서 구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의 표현으로는 “무대라기보다 성당에 가까운” 공간이다. 십자형 돌출 무대 한가운데에는 일본 미술가 소라야마 하지메가 디자인한 12m 높이의 로봇 조각상이 섰다. 여성의 형상을 한 금빛 조각상은 서서히 회전하며 연기를 내뿜었다.

녹색 레이저가 스타디움을 가르자 붉은 로브를 두른 댄서들이 대열을 이뤘고, 크리스털이 촘촘히 박힌 은빛 가면을 쓴 위켄드가 등장했다. 첫 곡은 ‘뱁타이즈드 인 피어’(Baptized in Fear). 가면의 두 눈에서도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스타보이’(Starboy)와 ‘하트리스’(Heartless), ‘페이스’(Faith)까지 일곱 곡을 부른 뒤에야 가면을 벗었다. 얼굴을 감추고 데뷔한 가수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 제 손으로 벗은 셈이다.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위켄드의 본명은 에이블 테스페이. 199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에티오피아 이민자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2011년 믹스테이프 ‘하우스 오브 벌룬스’(House of Balloons)를 내놓을 때 그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얼굴을 감췄다. 쾌락과 공허를 누아르처럼 그린 그의 노래는 알앤비(R&B)의 변방에 있던 어법을 팝의 한복판으로 끌고 왔다.

소년처럼 웃는 얼굴이 드러나자 쏟아지는 함성은 고양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 함성을 끌어안듯 제 몸을 감싼 그는 “한국이 보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2018년 한국 공연이 내 생애 첫 스타디움 쇼였다. 우리는 특별한 관계”라고 돌아봤다.

그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2018년 12월이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 2만4000여 명이 모이며 새로운 팝스타를 환영했다. 스물여덟 살이던 그는 R&B에 힙합과 록, 일렉트로닉을 뒤섞은 얼터너티브 R&B의 기수였다. 그 때까지 들어올린 그래미 트로피는 3개. 러닝타임이 짧아 아쉽다는 평도 따랐다. 공교롭게도 그때의 이름표가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8’이었다. 같은 숫자를 달고 돌아온 무대의 객석은 네 배 넘게 늘었다.

무대 위 도시는 곧 불탔다. ‘상파울루’(São Paulo)에 이르자 건물 잔해 사이로 불기둥이 치솟았고, 그 열기가 객석까지 끼쳤다. 베셀리는 이 무대가 온전한 모습으로 시작해 재로 끝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숭배와 균열, 재와 부활로 이어지는 네 개의 장이다. 15년간 쾌락과 공허의 도시를 노래해 온 가수의 관객은, 그 도시가 무너지는 과정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두 시간 내내 무대의 주인은 한 사람이었다. 댄서들은 배경에 머물렀다.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 차림의 위켄드는 폐허를 누비는 탐험가처럼 무대 끝에서 끝을 걸었다. 리듬을 타는 몸짓은 관광버스 춤을 닮아 소박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짜릿하면서도 부드러운 라이브였다. 손가락을 입에 대면 스타디움이 잦아들었고, 반주 없이 던진 한 소절에도 빈틈없는 떼창이 돌아왔다.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8년 사이 그는 완전히 다른 체급의 아티스트가 됐다. 2019년 11월 발표한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는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세계를 춤추게 했다. 빌보드는 2021년 이 곡을 핫100 역대 1위 곡으로 꼽았고, 지난해 8월에는 스포티파이 사상 처음으로 50억 회 재생을 넘겼다. 2021년 2월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에 섰다.

영광만 있지는 않았다. ‘블라인딩 라이츠’가 실린 앨범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2020)는 그래미 후보에 단 한 부문도 오르지 못했다. 그는 시상식 보이콧을 선언했고, 2025년 2월에야 그래미 무대로 돌아왔다. 2022년 9월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는 노래 도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대를 멈췄다. 그는 훗날 이 일을 할 말을 다 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이번 투어의 이력이 지난 격동의 8년을 고스란히 응축한다. ‘애프터 아워스’ 투어는 2020년 아레나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팬데믹으로 두 차례 미뤄졌다. 그사이 ‘던 FM’(Dawn FM·2022)이 나왔고, 그는 스타디움으로 판을 키워 2022년 7월 ‘애프터 아워스 틸 던’(After Hours Til Dawn)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나섰다. 2025년 1월에는 ‘허리 업 투모로우’(Hurry Up Tomorrow)로 3부작을 완결하며 ‘위켄드’라는 예명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투어는 이번 아시아 일정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고양의 무대는 그 서사를 거대한 스펙타클로 옮겨 놓았다. 약 40곡의 셋리스트는 최신작으로 문을 열고 데뷔작으로 되돌아가는 연대기였다. ‘허리 업 투모로우’의 세 곡이 앞장섰고, 3부작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8년 전에는 세상에 없던 노래가 열에 여섯이었다. 일본 공연에서 처음 공개한 미발표곡 ‘도쿄’(Tokyo)도 들려줬다. ‘캔트 필 마이 페이스’(Can‘t Feel My Face), ’더 힐스‘(The Hills) 같은 2018년의 레퍼토리는 그 사이사이에 놓였다. 박자에 맞춰 점멸하는 손목 밴드 불빛은 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눈이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팝스타 위켄드 [Sebastien Nagy 제공]

팬서비스는 압도적이었다. 그는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과 손바닥을 마주쳤고, ‘아웃 오브 타임’(Out of Time)에서는 객석에 마이크를 넘겼다. 음정은 번번이 빗나갔지만 함성은 더 커졌고, 위켄드는 노래한 팬을 끌어안았다. 첫날 그는 ‘원 오브 더 걸스’(One of the Girls)를 마친 뒤 인이어와 선글라스를 벗고 “내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길 바란다”고 고백했다. 둘째 날에는 이 곡에 참여한 블랙핑크 제니가 깜짝 등장해 함께 노래했다.

두 시간 동안 40여 곡을 쏟아붓다 보니 상당수 곡이 1~2절에서 끊겼다. 명곡 하나하나의 기승전결과 여운에 잠기기도 전에 다음 곡이 덮쳐 왔고, 미드템포 곡이 연달아 놓인 중반부에는 피로가 쌓였다. 객석의 반응도 엇갈렸다. 스트리밍 시대의 기록을 새로 쓴 가수의 무대가 재생목록의 문법을 닮은 것은 공교롭다. 15년의 궤적을 결산하는 자리였지만, 곡과 곡 사이의 맥락은 히트곡의 속도에 묻혔다.

그럼에도 이 공연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2010년대의 변방에서 출발해 2020년대 팝의 중심에 선 이름이 스스로 문을 닫는 장면을, 한국 관객은 그 마지막 여정에서 목격했다. 절정은 ‘세이브 유어 티어스’(Save Your Tears)에서 ‘블라인딩 라이츠’로 이어진 대목이었다. 스크린이 백색 섬광으로 뒤덮였고 스타디움 전체가 뛰었다.

그는 가장 유명한 노래에서 멈추지 않았다. 본공연은 2013년작 ‘키스 랜드’(Kiss Land)의 수록곡 ‘어댑테이션’(Adaptation)으로 닫았고, 앙코르에서는 ‘하우스 오브 벌룬스’로 출발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마지막 곡 ‘모스 투 어 플레임’(Moth to a Flame)에서는 폭죽이 밤하늘을 채웠다. “오늘 밤 여러분의 목소리가 아름답다”던 그는 무대를 떠나며 약속했다. “곧 다시 한국에 오겠다.” 이미 위켄드로는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며 ‘위켄드 시대’의 장례를 치르고 있었기에, 다시 돌아오는 이가 위켄드일지, 에이블 테스페이일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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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이맥스 스크린 위로 벨벳의 커튼이 카메라 조리개처럼 열린다. 본편의 서사가 채 시작되기 전, 관객과 스크린 사이에 놓여 있던 인위적인 장막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93446?ref=naver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