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에 최고로 치솟은 국채 금리
과다 복지에 재정 적자도 눈덩이
분열된 정치에 대선 포퓰리즘 경쟁까지
‘경제 자구 능력’ 실종 지적…불신 커져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한때 유럽 경제를 떠받치는 ‘큰형님’이었던 프랑스가 ‘문제아’가 됐다. 국가부채가 크게 불어나고,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유럽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떠올랐다. 한때 유럽 금융시장의 안전지대였던 프랑스가 이제는 과거 재정위기의 진원지였던 그리스, 이탈리아보다 더 높은 금리를 물고 돈을 빌리고 있다.
투자자들 외면하는 佛 국채, 금리 24년만 최고치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9일(현지시간) 4.85%를 기록했다. 지난 6일 4.9%까지 찍으며 5%에 육박했던 프랑스의 국채 금리는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빌린 막대한 빚을 차환해야 하는 시점에 금리까지 뛰면서 프랑스 정부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030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프랑스 국채는 1조달러(약 1339조원)를 넘는다. 다음해에는 사상 최대인 약 3800억달러(약 509조원)어치를 새로 찍어야 하는데, 한때 믿을 만한 수요처였던 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나고 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국채 매입을 중단하고 보유 채권이 만기가 돼도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줄여가고 있다. 꾸준히 국채를 사 주던 일본 자산운용사들도 발을 뺐고, 그 빈자리에 뛰어든 헤지펀드들마저 최근의 극심한 변동성에 손실을 입었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카르미냑의 케빈 토제 포트폴리오 자문역은 “프랑스는 수년간, 어쩌면 수십 년간 유럽의 무임승차자였고 재정 면에서 온갖 무책임한 짓을 하고도 무사히 빠져나갔다”라며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에는 통했지만 이제 알아차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재무부가 최근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정부의 부채 이자 비용은 2030년까지 59% 늘어날 전망이다. 이자 상환 비용은 이미 정부 지출에서 가장 큰 항목 가운데 하나로, 2030년께는 군사비 지출을 크게 웃돌 가능성도 있다. 에마뉘엘 물랭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최근 이런 상황을 “서서히 목이 졸리는 상태”라고 경고했다.
복지 과다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국가 부채
프랑스 경제는 이자 부담뿐 아니라 과도한 부채 문제까지 떠안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육박한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프랑스보다 재정적자가 큰 나라는 미국뿐이다.
부채 문제는 방대한 복지체계를 유지하느라 수십 년간 과도한 지출을 이어온 데 뿌리가 있다. 위기 때마다 국가가 나서 공공재정을 투입해주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정당 소속 의원인 실뱅 마이야르는 “프랑스에는 항상 국가에 약간의 ‘마법의 돈’을 요구하는 반사적인 습관이 있다”며 “‘돈을 내라, 내라, 또 내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공공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격렬한 ‘노란 조끼’ 시위를 달래기 위해 최소 100억유로를 푼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에도 대규모 지원책을 쏟아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에 수백억유로를 쏟아부었고, 가스 공급이 안정된 뒤에도 보조금은 이어졌다. 상원 조사를 이끈 보수파 장프랑수아 위송 의원은 “공공자금이 대거 투입됐지만 정부 안에서 누구도 플러그를 뽑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경기부양책과 인플레이션, 팬데믹 이후 수요 변동이 뒤섞이면서 프랑스 재무부가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 사용했던 경제 전망 모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왜곡의 규모는 마크롱 정부가 지원책을 거둬들이던 2023년부터 윤곽을 드러냈다. 2023년 재정적자는 GDP 대비 5.5%로 확대됐다. 유럽연합(EU)의 재정 준칙상 기준인 GDP 대비 3%를 크게 웃돈 것이다. 2024년은 GDP의 5.8%까지 재정적자가 불어났다.
분열된 정치…재정위기 해결 능력에 의문 나와
설상가상으로 극도로 분열된 정치 지형으로 인해 프랑스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불신도 나온다. 최근 몇 년간 분열된 하원 국민의회는 지출 삭감으로 재정질서를 회복하려 한 총리들을 잇달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다음해 봄 대선을 앞둔 프랑스는 유력 후보들이 오히려 지출 확대 공약을 쏟아내며 포퓰리즘을 자극하고 있다.
여론조사 선두인 극우 마린 르펜은 프랑스의 퇴직 연령을 최저 60세까지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본인 추산 연간 90억유로(약 13조5000억원)의 추가 재원이 드는 정책이다. 르펜을 뒤쫓고 있는 극좌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유럽중앙은행(ECB)이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유한 4880억유로 규모의 프랑스 국채를 동결하거나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멜랑숑은 이를 두고 “불에 던져버리라”고 말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르펜 진영이 압승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여당은 과반을 잃었다. 의회가 르펜 진영과 여권, 좌파 연합 3개 블록으로 갈라지면서 예산 처리는 해마다 혼란의 연속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3년째 GDP 대비 5%를 넘고 있으며, 재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30년에는 재정적자가 GDP의 6.8%까지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이란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금리까지 오르면서 투자자들은 부채가 많은 나라를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토제 자문역은 “앞으로 몇 년간 프랑스 국가부채 전체에 적용되는 평균 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돌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지출을 대폭 줄이지 않는 한 부채는 계속 불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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