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역의 숫자 뒤에 숨은 범죄, TBFC(Trade-Based Financial Crime)를 막는다
2013년, 창립 10주년 만에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며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던 기업이 있다. 그러나 2014년 세관 수사로 밝혀진 실상은 달랐다.
이들은 시장거래도 없는 가전제품을 1대당 수백만 원의 가격으로 수출신고하고, 허위로 작성된 수출서류를 근거로 시중은행에서 3조원 이상의 사기대출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상환되지 못한 약 5400억원의 대출금은 고스란히 금융권과 국민의 부담으로 남아 우리 경제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오늘날 ‘모뉴엘 사태’라 불리는 사건이다.
이후 관세청과 은행연합회,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은 제2의 모뉴엘 사태를 막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관세청이 보유한 수출입 데이터와 시중은행의 대출심사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무역채권의 이상 징후를 사전에 탐지해 사기대출을 차단하는 성과도 거뒀다.
모뉴엘 사태는 무역을 악용해 국가재정을 편취하거나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무역기반 재정·금융범죄(TBFC)’의 전형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이러한 범죄가 금융권 대출을 넘어 자본시장과 정부보조금, 공공조달, 건강보험재정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세관의 적발 사례를 보면 그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저렴한 통신 부품을 고가로 반복 수출입하여 매출 실적을 부풀리고, 이를 악용해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동시에 국가지원금도 부정 수령한 기업이 관세청에 적발됐다.
또한, 값싼 중국산 소방용 랜턴을 수입하여 원산지 스티커만 떼어내고 국산으로 둔갑시켜 전국 소방서에 납품한 업체, 요양급여 대상인 성인용 보행기의 수입 가격을 부풀려 신고해 요양급여를 편취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시킨 업체도 확인됐다.
이러한 범죄들을 정확하게 가려내려면 관세청의 수출입·외환 데이터와 각 제도·사업을 운영하는 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서로 연계해 교차 검증해야 한다. 정부지원사업과 공공조달 등을 담당하는 소관기관은 심사·지원 대상 기업의 정보를 갖고 있지만, 해당 기업이 신고한 수출입 실적이나 거래가격, 원산지가 실제 거래와 부합하는지를 자체적으로 확인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반면 관세청은 수출입·외환거래 자료를 분석해 실제 실적과 가격, 거래 상대방 등 무역거래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해당 기업이 정부지원이나 공공조달 등 어떤 제도·사업과 관련돼 있는지를 충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결국 각 기관이 각자 가진 정보를 연결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협업체계가 필요하다.
관세청이 지난 9월 3일 서울세관에 ‘무역기반 재정·금융범죄 특별수사단’을 출범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조달청·금융정보분석원 등 관계기관이 각자 보유한 기업·거래 정보를 관세청에 제공하면, 관세청은 이를 수출입·외환 데이터와 연계해 외환검사와 수사에 활용한다.
그 결과를 다시 소관기관에 전달하면 해당 기관은 지원금 환수와 입찰 제한 등 필요한 제재를 하고 제도의 허점도 보완한다. 이처럼 TBFC 특수단은 기관 간 칸막이를 허물고 정보 공유부터 분석·수사, 제재와 제도 개선까지 이르는 통합 합동점검·단속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의 중심 역할을 맡는 곳이 TBFC 특수단 산하 ‘TBFC 정보분석센터’다. 정보분석센터는 각 기관에서 공유받은 자본시장·공공조달·정부보조사업·정책금융 관련 정보와 관세청의 수출입·외환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의심업체를 선별한다. 수사·단속팀은 그 결과를 토대로 사안의 성격에 따라 수사에 착수하거나 외환검사를 실시한다. 관세청은 앞으로 협력기관을 확대하는 한편, 통합 합동점검·단속체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관계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무역서류에 적힌 숫자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근거가 되고, 정부지원과 정책금융의 지원 여부를 좌우하며, 투자자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숫자가 조작되면 피해는 성실한 기업과 투자자에게 돌아가고 국가재정에도 누수가 생긴다.
관세청은 수출입 거래에 숨은 실적·가격·원산지 조작을 정확히 가려내고, 그 결과가 환수와 제재, 제도 개선까지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정책의 혜택이 정당한 자격을 갖춘 국민과 기업에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경제국경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겠다.
kwonh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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