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 영화 ‘킬링타임’ 주역
“안 따라주는 몸” 극복한 류혜영
“정반대 인물에 매료된” 남윤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폐병원 복도에 카메라가 켜진다. 촬영 중 사망 사고가 발생해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 인터넷 방송 크루 ‘킬링타임’이 재기를 걸고 준비한 몰래카메라다. 가짜 귀신과 호러 장치로 게스트를 놀라게 하던 이들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난다. 촬영은 순식간에 생존을 건 사투로 바뀐다. 타자의 비명을 조회수로 바꾸던 이들이 이젠 공포를 체험하는 당사자이자, 모두의 구경거리로 전락한다다.
영화 ‘킬링타임’(21일 개봉)에서 류혜영은 죄책감을 안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스트리머 연우를, 남윤수는 재기를 위해 크루를 몰아붙이는 리더이자 PD 주원을 연기했다.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윤수는 “귀신은 안 나오지만 사람이 주는 공포를 느끼길 바랐다”고 했다.
두 배우가 이 작품에 당도한 길이 조금은 다르다. 내년이면 데뷔 20년을 맞는 류혜영은 작품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문을 두드려 왔다. 남윤수에게는 ‘킬링타임’이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슬로 러닝 전도사가 된 류혜영에게 이 작품은 유달리 몸을 많이 썼다. ‘액션’ 연기는 류혜영에게 오랜 갈증이었다. 하지만 ‘의욕’만으로는 몸이 따라오진 않았다. 그는 “액션스쿨에서 15초 분량의 동작을 익히자 숨을 고르는 데 15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헬스 트레이너와 처음 한강을 달린 날, 쉬지 않고 20분을 뛰고 공원 평상에 대자로 누워 30분을 쉬었어요. 이튿날 30분을 뛰고서야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류혜영)
이후 일주일에 5~6회 슬로우 러닝을 이어갔고, 두 달 뒤 다시 찾은 액션스쿨에서 달라진 몸을 실감했다. 류혜영은 “달리기가 싫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천천히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윤수가 연기하는 주원은 ‘목적’을 위해 동료를 움직이고, 필요하면 기꺼이 기만도 서슴지 않는 목적지향형 인물이다. 그가 주원에게 매료된 지점은 자신과의 거리감 때문이었다. 그는 분노 대신, 물 흐르듯 유연하게 관계를 통제한다.
남윤수는 “주원이 교활한 인물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면모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저 역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반대라서 오히려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촬영은 2024년 10월 단 한 달, 20회차 안에 촘촘하게 마무리돼야 했다. 신인 배우가 즐비한 현장에서 평소 낯을 가리는 류혜영은 오히려 먼저 벽을 허물며 다가섰다. 충북 음성 숙소에 머물던 날에는 개천을 따라 동료들과 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처음엔 류혜영이 고작 “두세 살 차이 또래”인 줄 알았다는 남윤수는 현장을 이끌어준 선배를 또렷이 기억했다. “홍보할 때도 먼저 나서서 ‘걱정하지 마’, ‘떨지 말라’고 툭툭 말해줬는데,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남윤수)
류혜영은 6살 아래인 남윤수를 보며 자신이 지나온 서른 살 시절을 떠올렸다. 외부의 평가와 스스로의 잣대에 부딪치며 감정적으로 바닥을 찍었던 시기다. “윤수는 이미 겪고 득도한 사람처럼 안정적이에요. 자연을 즐길 줄 알고 무슨 일이 생겨도 넘길 줄 알아요.” (류혜영)
지금의 궤도에 오르기까지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했다.
류혜영의 연기 궤적은 독립영화 현장에서 다져진 단단함이 지탱하고 있다. 2013년 영화 ‘잉투기’ 등 다수의 독립영화를 거치며 날 것의 에너지를 발산했던 그는 ‘킬링타임’에서도 날선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대중에겐 ‘응답하라 1988’의 괄괄한 성보라나 ‘로스쿨’의 강단 있는 강솔A로 각인되지만, 그는 언제나 인간의 취약하고 불안한 이면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강렬한 잔상은 늘 족쇄가 됐다. 캐스팅은 늘 비슷한 결의 역할에 머물렀고, 타협하지 않으려다 보니 의도치 않은 공백도 길어졌다. 그는 “사지가 멀쩡한데 가만히 부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감옥같았다”고 돌아본다. 늘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여주고 싶은 갈증은 이번 영화로 해갈의 기쁨을 마주했다.
남윤수 역시 화려한 런웨이의 모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영리하게 떼어내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넷플릭스 ‘인간수업’에서 서늘한 불량학생 기태 역을 맡아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충격을 안겼던 그는, 해사한 미소를 지우고 언제든 악역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전 딱히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배우로서 다양한 배역을 하길 바란다”며 “이걸 하면 다른 작품 못 할테네데 괜찮겠냐는 걱정도 많이 들었지만,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며 연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걸어온 궤적은 다를지라도, 두 사람이 응시하는 종착지는 결국 ‘오래 연기하는 배우’로 수렴한다. 남윤수는 “배우로서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니 지금 할 수 있을 때 많이 배우고 싶다”고 했다. 데뷔 20년 차를 목전에 두고 원치 않는 침묵마저 오롯이 버텨낸 류혜영은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
“‘이만큼 지난하게 버텼네. 그런데도 여전히 새롭네.’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요.” (류혜영)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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