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경영권 승계에 관해 주목할 만한 시도가 이뤄졌다. 혈족 경영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려는 세라젬, 공개회사를 사실상 머스크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로 바꾸려는 일론 머스크의 선택이다.

세라젬의 경우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경영권 승계와 재산 상속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중소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머스크의 사례는 창업자에게 강력한 의결권을 부여하는 미국 스타트업·IT 생태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혁신을 이끈 창업자의 지배력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그 반대편에서 일반주주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지라는 질문도 던진다.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만 차등의결권 논란이 집중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되돌아보게 한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입니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입니다.

세라젬, 왜 증여 대신 양자?…연대납세의무

상속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원칙이 하나 있다. 공동상속인은 서로의 상속세에 대해 연대납세의무를 진다. 자신이 받았거나 받을 상속재산을 한도로 다른 상속인이 내야 할 세금까지 대신 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알고 보면 세라젬이 독특한 경영승계를 택한 이유가 짐작된다.

세라젬 창업주 이환성 회장은 지난해 전문경영인인 이경수 대표를 성인 양자로 입양했다. 이 회장에게 외동딸이 있지만 회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을 물려주려면 증여도 가능하다. 그런데 왜 입양을 선택했을까? 민법상 양자는 친생자와 같은 상속권을 갖는다. 이 회장의 원래 가족과 함께 공동상속인이 된 것이다. 연대납세의무도 성립한다.

경영권과 가산(家産) 분리…LG그룹이 전례

상속재산 가운데 회사 주식의 비중이 크다면 주식을 물려받은 이 대표가 상당한 상속세를 부담하게 된다. 다른 공동상속인의 상속세도 자신이 받은 상속재산 범위에서는 대신 낼 수 있다. 그 범위의 대납은 별도의 증여로 보지 않는다. 양자 입양을 통해 기업을 물려받는 사람과 다른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을 나누고, 기업을 승계한 이가 다른 공동상속인의 상속세까지 부담하는 모델이다.

이미 전례는 있다. LG그룹 구광모 회장은 고(故)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경영권과 관련된 ㈜LG 지분을 대부분 물려받았다. 대신 다른 공동상속인의 상속세를 대납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세라젬은 친족이 아닌 이를 양자로 삼았다는 게 LG와의 차이다.

이 대표가 어떻게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수년 전 세라젬은 기업공개(IPO)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상장이 다시 추진된다면 지분 유동화를 통한 상속세 재원 마련도 가능해진다.

테슬라+스페이스X=머스크 패밀리 컴퍼니

세라젬이 혈연 중심 대신 경영의 영속성을 지키려는 선택을 했다면, 세계 1위 부자 일론 머스크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합병 시도다.

지난 22일 기준 시가총액은 테슬라가 약 1조4810억달러, 스페이스X가 약 1조9660억달러다. 이를 기준으로 합병회사의 경제적 지분을 추정하면 스페이스X 기존 주주가 약 57%, 테슬라 기존 주주가 약 43%다.

테슬라의 머스크 지분은 약 19.8%다. 나머지 약 80.2%는 일반주주들이 갖고 있다. 머스크가 최고경영자(CEO)이자 최대주주지만 머스크 마음대로는 못한다. 이론적으로 80.2%가 뭉치면 견제가 가능하다.

반면 스페이스X는 클래스B 주식에 1주당 10표의 차등의결권을 부여한다. 머스크는 이를 통해 경제적 지분을 크게 웃도는 의결권을 행사한다. 클래스B는 허용된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면 클래스A로 자동 전환된다. 머스크의 지배력이 쉽게 희석되지 않는 구조다.

이번 합병이 시총대로만 정해진다면 테슬라 일반주주들은 회사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적 의결권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개별적으로는 소액주주지만 모두 합치면 80.2%다. 집단적으로는 테슬라의 최종 지배권자다. 따라서 합병의 최대 쟁점은 테슬라 일반주주가 집단적으로 보유한 지배력에 얼마의 값을 매기느냐다.

테슬라 일반주주 지배력 웃돈 수준이 관건

미국은 한국과 합병 비율을 정하는 제도가 다르다. 합병 발표 전 주가나 일정 기간의 평균주가가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되지만 최종은 아니다.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 할인(DCF), 비교기업 가치, 과거 유사 거래, 사업 전망과 시너지 등을 종합해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일반주주의 의결권에 높은 가치가 부여된 사례도 있다. 2024년 스카이댄스와 합병할 당시 파라마운트는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A 약 4070만주,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는 클래스B 약 6억1100만주를 발행하고 있었다. 협상 결과 클래스A에는 현금 23달러 또는 합병회사 주식 1.5333주, 클래스B에는 현금 15달러 또는 신회사 주식 1주가 제시됐다.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A에 클래스B보다 53.3% 높은 가격이 제시됐다. 물론 이 차이를 모두 의결권의 값이라고 볼 수는 없다. 유통구조와 지배구조 변화 등에 따른 가치나 기회비용도 포함됐다고 봐야 한다.

이미 시장은 최대 35%의 ‘웃돈’을 기대하고 있다. 22일 테슬라 종가 374.58달러와 스페이스X의 현재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웃돈 10%일 때 테슬라 1주의 합병상 가치는 412.04달러, 테슬라 기존 주주의 합병회사 경제적 지분율은 45.3%다. 20%면 449.50달러와 47.5%, 30%면 486.95달러와 49.5%, 35%면 505.68달러와 50.4%다.

한국도 곧 미국식 합병가액 도입…의결권 가치는?

테슬라에는 한국 투자자들도 다수 투자하고 있다. 합병 비율이 남의 얘기만이 아니다.

그런데 오는 12월 9일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지금처럼 특정 시점의 주가에 기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주식가격과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가액’을 적용해야 한다. 이사회는 합병 목적과 기대효과, 가액의 적정성을 검토해 의견서를 작성해야 하고 외부 전문평가기관은 가액뿐 아니라 거래조건의 적정성까지 평가한다. 기존 시행령의 구체적인 합병가액 산식은 오히려 삭제된다.

기업의 실질가치를 제대로 따지자는 취지다. 특정 시점의 주가를 눌러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드는 문제도 막겠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무엇이 ‘공정한 가치’인지가 되는 셈이다.

개정법은 ‘주식가격,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이라고 규정한다. ‘등’이니 평가 요소를 세 가지로 한정한 것은 아니다. 외부평가기관이 ‘거래조건의 적정성’까지 살피도록 한 만큼 다른 경제적 가치를 고려할 여지도 있다. 다만 일반주주들이 집단적으로 가진 의결권 또는 지배력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해 합병 조건에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평가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 경영권이 바뀔 때 일반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공개매수 물량의 구체적인 규제 수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법률상 대통령령이 정할 수 있는 최저선을 50%+1주 이상으로 두는 방향이다.

그렇다면 합병은 어떨까? 경영권을 팔 때는 일반주주에게 웃돈을 나눠주는데, 합병으로 일반주주가 집단적으로 가진 지배권을 잃을 때는 그 가치를 평가하지 않아도 될까? 의결권 가치가 인정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