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찍고, 서울 이어 경기·제주로

사천가·억척가에서 노인과 바다까지

“나보다 어린 조선의 소리꾼도 해냈다”

이자람 ‘눈, 눈, 눈’ [LG아트센터 제공]
이자람 ‘눈, 눈, 눈’ [LG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히히힝~.”

텅 빈 무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말 울음소리가 흩날린다. 눈더미 속에서 제티의 다리는 힘이 풀려 기진맥진이다. 눈길을 얼음판으로 만드는 설원의 추위가 제티의 발을 자꾸만 붙잡는다. 아뿔싸. 눈구덩이에 빠진 걸까. 오르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제티의 모습에 아그작아그작 당근을 씹어먹던 사랑스러운 모습이 포개진다. 생사가 오가는 ‘비상사태’에 소리꾼 이자람이 바빠진다. ‘휘이잉 휘이잉’ 새하얀 부채를 펼쳐 관객에게 눈보라 치는 소리를 맡기고, 그는 바실리와 니키타, 제티를 쉼 없이 오간다. 아아, 이런 제티! 서울 한복판도 프랑스 아비뇽도 계절과 무관하게 19세기 러시아 혹한의 설원이 된다.

2025년 초연한 이자람의 ‘눈, 눈, 눈’은 올여름 세계 최고 공연 축제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으로 무대에 섰다. 서울(10월 23~24일, LG아트센터) 공연을 마친 뒤 경기(12월 12~13일, 경기아트센터)와 제주로 향한다.

아비뇽 페스티벌 전후로 만난 이자람은 “무대에 오르기 전엔 지금도 여전히 떨린다”며 “그래도 이제 내 몸에는 큰 무대에 설 준비가 차곡차곡 쌓인 것 같다”고 했다.

아비뇽 찍고 다시 韓으로…“너 ‘네주 네주 네주’야?”

‘얼쑤’ 대신 “울랄라~”가 터졌다. 이자람이 부채를 펼치면 1층부터 4층까지 프랑스 관객들이 “쉬이~” 하고 눈보라 소리를 쏟아냈다. 이자람은 “함께 공연을 만들고 싶어 드릉드릉하던 객석”이었다며 웃었다. 아비뇽의 여름은 뜨거웠다. 이자람은 당시를 떠올리며 “어딜 가나 예술가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80% 이상을 채우고 있는 꿈나라 같은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테크니컬 리허설을 하고 다음 날 숍에 갔더니 직원들이 수군거리다 제게 ‘너 네주, 네주, 네주(neige, 눈의 불어)야?’하고 묻더라고요. 리허설을 본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표를 구하는 중이라면서요. 그제야 ‘아, 어디에나 관객이 있는 곳이구나’ 실감했어요.”

이자람 ‘눈, 눈, 눈’ [LG아트센터 제공]
이자람 ‘눈, 눈, 눈’ [LG아트센터 제공]

올해로 80회를 맞은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어가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되며 ‘눈, 눈, 눈’은 약 700석 규모의 ‘오페라 그랑 아비뇽’ 무대에 섰다. 주최 측이 내민 후보 중엔 ‘축제의 상징’인 교황청 무대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무대에 서 본 이자람은 안전하면서도 작품에 어울리는 극장을 선택했다.

“공연 한 번에 직장인이 일주일간 회사 다니는 만큼의 에너지를 응축해서 써요. 그런데 교황청은 1년짜리였어요. 저 끝에 앉은 관객 얼굴이 요만하게 보이더라고요. 나흘을 하자고 4년을 깎아 먹을 수는 없잖아요.”

판소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한국어의 말맛과 뉘앙스가 생명인 장르다. 특히 이자람의 무대는 독창적이고 맛깔스러운 표현, 의성어·의태어가 연기, 소리와 어우러져 더 풍성해진다. 그러니 아비뇽 공연을 앞두곤 ‘언어의 장벽’이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판소리의 웅숭깊은 연극성은 현지 관객을 무장해제했다. 이자람은 “무대 위에서 나도 상상력의 힘을 엄청나게 쓰는데, 그 상상력은 관객이라는 엔진이 각자의 상상력이라는 가솔린을 먹으며 움직인다”고 했다.

물론 날마다 같은 반응이 돌아온 건 아니다. 이자람은 “셋째 날 공연에선 관객들이 너무 조용해서 ‘잘 가고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며 “박지혜 연출가가 ‘이곳은 지적인 것들이 문화적으로 중요한 나라라, 인물과 드라마가 어디로 가는지를 엄청나게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거니까 믿고 가라’고 조언해 줬다”고 돌아봤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자 객석은 스프링처럼 일어섰다. “아, 연출이 말한 게 이거였구나 싶었죠.”

“우리는 살면서 지쳤다가 힘냈다가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잃어버리곤 하잖아요. 그 잃었던 걸 우연한 계기로 다시 찾는 순간을 인간의 삶에 좀 더 자주 선물하는 게 예술인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것들이 흑백화되는 이 시대와 시간 속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다시 컬러로 바꿔주려는 노력. 무대 예술이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원제 Buen viaje, señor presidente)을 원작으로 삼은 이자람의 ‘이방인의 노래’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원제 Buen viaje, señor presidente)을 원작으로 삼은 이자람의 ‘이방인의 노래’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미운 사람을 마음으로 허락할 때…비로소 이야기는 열린다

“사실 처음엔 바실리를 깊이 미워했어요.”

톨스토이 단편 ‘주인과 하인’을 원작 삼은 ‘눈, 눈, 눈’은 탐욕스러운 상인 바실리와 충직한 하인 니키타, 바실리의 말 제티가 눈보라 속에서 고립돼 벌어지는 생사의 궤적을 좇는다.

이자람은 “싫어하는 수많은 권력자를 바실리에 이입하면서 이 이야기를 봤다”고 털어놨다. 중심을 잡지 못해 애태우던 그에게 드라마투르그 하워드 블레닝은 지하철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다. 자리를 양보해 준 여성은 천사가 아니라, 눈앞에서 인류가 으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바실리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였다. 이자람은 “오히려 더 아리송해졌다”고 했다. 실마리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어느 날 방 안에서 바실리의 대사를 연습하다 울컥하는 순간을 만났다. “그날이 바실리가 제게 걸어 들어온 날이에요.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요. 마음이 진짜로 허락하는 순간이 필요했던 거죠.”

하워드의 말이 또렷해진 건 무대 위에서였다. 관객 앞에서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그 뜻이 선명해졌다. “우리는 인류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이토록 공명하고, 제가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이자람은 톨스토이는 물론 브레히트, 마르케스 등 서양 고전 문학을 한국의 판소리로 치환해 자기만의 독창적 토양을 구축해 왔다.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은 ‘사천가’(2007)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은 ‘억척가’(2011)로 다시 태어났다. 판소리는 으레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을 중심으로 해온 장르이지만, 이자람은 일찌감치 동서양을 넘나드는 소재와 원작을 발굴해 새 숨을 불어넣었다. 소리꾼의 시선이 한국을 넘어 이국의 땅으로 향한 데엔 이유가 있다.

이자람은 “판소리는 100% 몸에서 나오는 소리의 질감으로 멀리 있는 이야기를 가깝게 끌어당겨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르”라며 “어떤 슬픔이나 사건을 이야기할 때 감정의 농도가 짙어지고 확대된다”고 했다.

소리꾼 이자람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소리꾼 이자람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한국 근현대 소설은 판소리로 담기엔 제 피부에 너무 가까워요. 담으면 과해지거든요. 물론 그 과함이 힘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피로로 느꼈어요. 그 피로를 관객에게 주고 싶지 않아요. 당분간은 거리가 먼 고전에서 동시대의 우리와 만나는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나중엔 또 바뀔 수 있고요.”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진 인고의 시간을 거듭한다. ‘눈, 눈, 눈’을 작업할 땐 한국어 번역본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믿을 만한 영어 번역본을 찾아 대조하며 뉘앙스를 파고들었다. 구글 번역기를 일일이 돌려가며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24년 1월에 원작을 만난 ‘눈, 눈, 눈’은 그렇게 1년 3개월을 거쳐 지난해 4월에 세상에 나왔다. 이자람의 작품은 통상 1~2년의 시간을 들여 태어난다.

“‘사모바르’(‘주인과 하녀’에 등장하는 단어)라는 단어가 나오면 유튜브로 사모바르 끓이는 영상을 계속 찾아봤어요. 집 안에서 사모바르가 계속 끓고 있어야 집 전체가 따뜻하고, 그 차를 함께 우려 마시는구나. 작가가 이 주전자 하나로 말하고 싶었던 분위기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려고 했어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창작의 샘물이 마르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이자람은 늘 “내 주머니에는 이야기가 비어 있다”고 고백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로 곳간을 채워두는 타입은 아니란다. 희곡이나 소설을 읽다 어느 날 벼락처럼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꽂히는 순간을 만난다. 창작의 과정은 고단하다. 이자람은 작품을 만드는 일을 “삶의 밑바닥까지 치고 올라오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매번 같은 모양의 여정이지만, 꼭 한 번은 바닥을 쳐야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노래’를 쓸 때는 원작 속 인물 ‘라사라’가 이해되지 않아 고생하다가, 어느 날 라사라가 억척스러운 우리 큰언니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순간 펑펑 눈물을 쏟았어요. 그 순간을 찾으면 작품이 좋아져요. 내년이면 저는 또 이걸 까먹겠죠. 그럼 또 어떤 작품을 통해 발견하고, 또 울겠죠. 작품을 만드는 일이 저한테는 수행 같아요.”

이자람 ‘노인과 바다’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이자람 ‘노인과 바다’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전통은 족쇄가 아냐…나를 구원하는 건 연습뿐”

타악기와 베이스 등 다채로운 서양 악기를 동원해 밴드 사운드로 무대를 채웠던 ‘사천가’, 거대한 수레와 여러 소품을 활용해 전쟁통의 스펙터클을 구현했던 ‘억척가’를 지나, 오직 소리꾼의 부채 하나와 북소리만으로 망망대해를 빚어낸 ‘노인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흐르며 이자람의 무대는 비워졌다. 이자람의 작품 세계는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끊임없이 덜어내는 ‘여백의 작법’으로 향했다. 미장센을 거둬낸 빈 무대는 오롯이 소리꾼의 공력과 관객의 상상력만으로 팽팽하게 채워진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판소리라는 장르의 본질을 깊이 신뢰하게 된 결과다.

“예전엔 겁이 많았어요. 판소리만으로는 초라할까 봐, 관객이 만족하지 못할까 봐 미장센과 악기들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노인과 바다’ 즈음부터 ‘판소리만으로 충분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판소리는 혼자서도 너무 대단한, 커다란 나무거든요. 지금도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을 땐 의심해요. 작품이 필요해서 들어오는 악기는 괜찮지만, 내가 자신이 없어서, 혹은 외로워서 끌어들이는 건 아닌지요.”

작창(作唱)의 방식 역시 진화했다. 이전엔 대본을 완성한 뒤 소리를 붙이고 초연을 올린 뒤에야 고쳤다면, ‘노인과 바다’부턴 대본과 작창을 빨리 내놓고 연습 기간 중 수정을 거듭한다. 이자람은 “작창을 해봐야만 아는 게 판소리다. 직접 불러보고 장단을 타봐야 ‘아, 이 장단이 아니구나’ 하는 감각이 온다”며 “초연 뒤에 고치던 걸 연습 기간 안으로 당긴 것”이라고 귀띔했다.

무대를 비우고 작창 방식을 바꾼 변화는 ‘노인과 바다’(2019)에서 시작됐다. 이자람이 소리꾼으로서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로 꼽는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자기 몸을 돌보는 법을 배운 것”도 이때였다.

“‘노인과 바다’가 무대 위에서 제 몸까지 살피는 사람으로 저를 훈련했어요. 그전까진 몸이 어떻게 되든 그냥 공연했거든요. 그때부터 제 컨디션도 같이 살필 줄 아는 퍼포머가 됐고, 기술도 많이 늘었어요.”

이자람 ‘사천가’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이자람 ‘사천가’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동요 ‘내 이름 예솔아’ 속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찾으시던 ‘예솔’이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때가 겨우 다섯 살이었다. 열 살 무렵 은희진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30년 넘게 소릿길을 걸었다. 이자람에게 판소리는 단 한 번도 박물관의 유물인 적이 없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단단히 굳어 있던 인물들을 마구 주물러 입체감을 입힌다. 21세기의 창작자로서 전통을 짊어지는 중압감에 짓눌릴 법도 하지만, 이자람은 이를 기분 좋은 연대로 풀어낸다.

“대본을 쓰다 막혀 답답할 때면 상상해요. ‘조선시대 소리꾼들도 ‘삼국지연의’를 가져다 ‘적벽가’를 짤 때 얼마나 암담했을까. 선배 명창들의 멋짐에 눌려 자학도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묘한 위로가 돼요. 저는 대단히 새로운 걸 발명하는 게 아니라, 그저 판소리하는 거라고요. 전통도 결국 누군가 만든 거잖아요.”

이자람은 요즘도 판소리 앞에서 놀라곤 한다. “조선시대에 어떻게 이런 예술이 만들어졌을지 신기할 정도”라는 것이다. 판소리는 태생적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장르다. 이자람은 이를 “400년 전부터 이어진 엄청난 연극성”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한테 다들 연기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봐요. 전 판소리에서 배웠어요. 소리꾼의 세포에 박힌 0.0001초 단위의 정교한 리듬감은 감히 세계 최고라고 봐요. 연극인들이 훈련을 통해 애써 찾아내려는 기술이 판소리 안에는 이미 다 들어있어요.”

늘 가슴 한쪽엔 전통에 대한 경외와 경각심을 품고 있다. 평생 연습하고 동경해 온 장르다. “뭐든 7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지만, 이자람은 “판소리는 그 시간으로 모자란다”고 했다. 가진 게 너무 많아서다. 지금도 전통 판소리를 연습하다 보면 새로 발견하는 게 많다며, 판소리를 “괴물 같은 장르”라고 말한다. 감탄은 경탄으로, 경외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때마다 이자람은 긍정으로 생각을 다잡는다.

이자람 ‘억척가’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이자람 ‘억척가’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저한텐 애증의 판소리예요. 몸을 너무 상하게 해서 미워 죽겠는데, 그만큼 주는 게 많아요. 전통에 눌릴 때마다 생각해요. ‘조선시대에 나보다 어린 소리꾼도 힘내서 했어, 나도 할 수 있어’라고요.”

그토록 많은 무대에 섰지만, 이자람은 무대에 오르기 전엔 수없이 흔들린다고 고백한다. 그를 붙잡는 유일한 동아줄은 다름 아닌 ‘연습’이다. 이자람은 “마음이 흔들릴 때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너무 퍼져 있다 싶을 때도 연습한다”고 했다.

“핸드폰을 가진 우리 모두가 ‘나만 초라하고 나만 쓸데없다’는 자괴감을 느끼잖아요. 그게 심해지면 저는 연습을 해요. 나만 잘할 수 있는 걸 키우는 거죠. 시작하기 싫어도 그냥 해요. 하면서 믿어요. 무대 오르기 전 덜덜 떨릴 때도, ‘네가 묵묵히 연습해 온 시간이 있잖아’ 그렇게 말하고 올라가면, 그 시간들이 무대 위에서 저를 도와주더라고요.”

무대는 이자람에게 가장 좋은 연습실이다. 집에서 100일을 연습해도, 무대에서 관객과 한 번 만나면 그게 100일 치 연습이 된다. 혼자 무대에 서는 만큼 소리꾼의 컨디션과 마음이 곧 작품의 상태가 된다. 이자람은 “성장 추구형은 아니지만, 도태는 하지 말자고 생각한다”며 “내가 도태되면 작품도 같이 도태되니까”라고 덧붙였다.

떨리는 날, 이자람이 붙드는 말은 단순하다. “제가 떨릴 때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하던 대로 합시다, 준형 씨(고수 이준형). 우리 연습한 대로 합시다.’ 관객분들도 제가 맛있게 먹는 이 판소리를 같이 맛있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