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내 집에서”
‘서울형 자택 임종 안심 지원사업’ 제안
존엄한 마지막 위한 공공의료체계 구축 촉구
서울시·자치구 협력 통한 지역 의료안전망 강조
“통합돌봄, 취약계층 넘어 중산층까지 확대해야”
[헤럴드경제=양정원 기자] “평생 살아온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이 특별한 요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가족들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상범 서울 신내의원 원장이자 대한재택의료학회 총무이사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이제는 ‘어디에서 치료할 것인가’를 넘어 ‘어디에서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환자가 익숙한 집에서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도 이를 뒷받침할 의료·돌봄체계가 부족해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27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와 자치구가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임종을 앞둔 환자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가칭 ‘서울형 자택 임종 안심 지원사업’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집에서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환자들이 있지만 막상 임종이 가까워지면 의료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제는 개별 의료진이나 가족의 희생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이 책임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이 원장이 노인 의료에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은 외할머니의 투병과 임종이었다. 어린 시절 각별했던 외할머니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령 환자를 가정에서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
이후 경남 고성에서 노인 환자들을 진료하며 지역사회 고령화의 현실을 체감했고, 서울에서는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노인 의료에 집중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시설 중심 의료의 한계가 뚜렷해졌다. 집단감염과 면회 제한으로 환자와 가족이 분리되는 상황이 반복됐고, 병원보다 익숙한 집에서 진료받기를 희망하는 환자들도 늘어났다.
이 원장이 방문진료 중심의 재택의료로 활동 영역을 전환한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확인한 가장 큰 과제는 단순히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아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 요양, 돌봄을 연결하는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눈감고 싶어도”…응급실로 향하는 고령 환자들
고령 환자들은 폐렴, 요로감염 등으로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퇴원하더라도 기저질환이나 노쇠로 인해 이전의 건강 상태를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와 가족은 반복적인 입원보다 익숙한 집에서 편안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자택에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의료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연결돼 있지 않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나 의식 저하가 발생하면 가족들은 당황해 119에 신고하게 되고, 환자의 사전 의사와 관계없이 응급실 이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택에서 사망한 경우에도 기존 진료기록이나 담당 의료진과의 연계가 충분하지 않다면 사망 원인 확인을 위한 경찰 조사 등 예상하지 못한 절차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이 원장은 “집에서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있다가 돌아가시고 싶다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며 “자택 임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응급실을 전전하거나 경찰의 변사 사건 처리로 이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환자와 가족에게 너무 큰 고통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가 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종 이후의 대응보다 환자의 건강 상태와 임종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담당 의료진이 환자의 질환과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환자와 가족이 치료 방향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사전돌봄계획과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리가 연계된다면 불필요한 응급실 이송을 줄이고 가족의 불안도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러한 체계가 개별 의료기관의 노력만으로 운영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료진과 환자를 연결하고 야간·휴일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4시간 의료 대응, 가족 돌봄 지원
‘서울형 자택 임종 안심 지원사업’ 제안
이 원장이 제시한 대안은 가칭 ‘서울형 자택 임종 안심 지원사업’이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자택 임종이 예상되는 고령 환자를 사전에 파악하고,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건강 상태를 관리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24시간 의료 대응체계 구축이다.
임종 시점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평일 낮 시간에만 제공되는 방문진료로는 환자와 가족의 불안을 충분히 해소하기 어렵다.
야간이나 휴일에도 의료진과 연락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경우 방문진료 등 의료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지역 단위 협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수의 의사가 참여하는 당직체계를 구성하고 대기와 진료에 필요한 비용을 공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원장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365일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며 “의사의 당직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고,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이 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가족 돌봄 지원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고령 환자를 장기간 돌보는 가족들은 수면 부족과 신체적 피로, 경제적 부담, 심리적 압박을 동시에 겪는 경우가 많다.
가족의 돌봄 역량이 한계에 이르면 환자가 집에서 생활하기를 희망하더라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 입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방문요양 등 돌봄서비스 확대, 가족이 잠시 쉴 수 있는 단기 돌봄 지원, 사별 이후 심리적 지원까지 연계하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서울시가 시범사업을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먼저 확인할 것을 제안했다.
중랑구, 노원구 등에서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하는 모델을 우선 시행하고, 운영 성과에 따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는 단계적 접근이다.
시범사업에서는 응급실 이송 감소 가능성, 가족의 돌봄 부담 완화, 의료진의 대응 실적, 지역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차원의 사업 추진이 당장 어렵다면 중랑구 등 기초자치단체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택 임종 지원체계가 특정 의료기관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사업으로 비치지 않도록 지역 주민 누구나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돌봄, 중산층도 필요”…환자 중심 의료서비스로 전환해야
이 원장은 올해 3월 27일 시행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역사회 중심 의료체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법은 노쇠와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과 서비스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뿐 아니라 중산층 가정에서도 고령의 부모를 집에서 돌보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서비스 이용 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통합돌봄이 단순한 복지서비스 연계에 머물지 않고 실제 의료서비스를 집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분야로 대형병원에서 퇴원한 환자가 가정으로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환기 의료’를 제시했다.
고령 환자는 퇴원 이후에도 각종 의료기기를 사용하거나 욕창, 영양 상태, 만성질환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퇴원 후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연결되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돼 다시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낙상이나 골절 이후 신체 기능 회복을 지원하는 ‘재택 재활’도 확대가 필요한 영역이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병원이나 재활시설을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적절한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물 관리 역시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현재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방문진료를 받더라도 처방약을 수령하기 위해 가족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원장은 최근 일본 재택의료 현장을 방문하면서 약사가 환자의 집을 직접 찾아가 복약 상태를 확인하고 약물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서비스에 주목했다.
단순히 약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약사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환자의 복약 상태를 점검하고 올바른 약물 사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러한 방문 복약지도 체계가 국내에도 정착된다면 고령 환자의 편의성과 약물 사용의 안전성을 함께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의료기관과 지역 약국의 협력, 관련 제도 정비, 적절한 보상체계 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집에 있는 분들도 인간적인 대접은 받아야 한다”며 “아프고 약한 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서 돌봐드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환자 중심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강조하는 재택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병원 밖에서 진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령 환자가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가족과 일상을 이어가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택 임종 지원 역시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정책이 아니라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까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초고령사회에서 병원 중심 의료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고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원장이 제안한 ‘서울형 자택 임종 지원체계’가 서울시의 새로운 공공의료 모델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7toy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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