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집전 여의도성당 장례미사
팝페라 테너 임형주 ‘아베 마리아’로 배웅
생전 당부 따라 초록우산 본부서 작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죽으면 재단에 꼭 들러 달라.”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의 마지막 길은 장지로 곧장 향하지 않았다. 45년을 함께한 아이들의 집을 한 번 더 둘러본 뒤에야 영면에 든 것. 이는 그가 생전에 했던 당부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별세한 고(故) 최불암의 발인식이 2일 오전 7시 40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동료 배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공개로 엄수됐다. 고인의 영정을 든 운구 행렬을 따라 아내인 배우 김민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민자를 부축한 이는 그와 40여년간 인연을 맺은 배우 김혜수였다.
이후 운구 행렬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으로 향했다. 오전 9시부터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거행되는 장례미사를 위해서다. 염 추기경은 지난 2018년 고인에게 세례를 하고, 별세 아흐레 전 병상에서 병자성사를 집전한 인연이 있다. 고인은 “가난한 이웃을 섬긴 아시시의 성인을 따르겠다”며 세례명 ‘프란치스코’를 직접 골랐다. 미사에서는 고인을 ‘이모부’라 부르던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임형주는 “세상을 떠날 때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해 달라고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미사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오전 10시 40분께 서울 중구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로 향한다. 임직원들이 도열해 영정을 맞고 추도사와 헌화가 끝나면, 영정은 재단 안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돈다. 장지는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이다.
재단과의 인연은 드라마에서 비롯됐다. 1981년 MBC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이 금동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전파를 탄 뒤 고인의 아동 후원을 시작했고, 1985년부터 41년간 전국후원회장을 지냈다. 장례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른 것도 고인의 뜻이었다. 장례위원장인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말을 잇기 어려웠던 고인이 장례를 잘 모시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했다.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해 드라마 130여 편, 영화 90여 편, 연극 50여 편을 남겼다. MBC ‘수사반장’(1971~1989)의 박 반장,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이 모두 최불암의 얼굴이었다. 2011년부터 14년간은 KBS 1TV ‘한국인의 밥상’으로 전국의 부엌을 찾아다녔다.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 뒤 재활에 힘썼으나 지난달 29일 눈을 감았다.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빈소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첫 조문객은 ‘전원일기’에서 22년간 둘째 아들 용식이었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유 전 장관은 건강이 좋아지면 9월쯤 보자던 고인과의 약속이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세월 극 중 아내였던 김혜자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그리운 사람이니까 곧 만날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빈소 앞에서 마주친 윤여정은 김혜자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서울 중앙고 동창으로 1967년 함께 KBS 특채로 방송에 발을 디딘 오지명은 오랜 벗을 먼저 보낸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문희는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서 마음 한구석이 많이 섭섭하다”고 했다. 1987년 드라마 ‘사모곡’을 계기로 고인을 ‘아버지’라 불러 온 김혜수는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의 신발을 정리하고 김민자를 부축했다. 장례위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면도하지 않은 얼굴 그대로의 영정을 두고 “돌아가신 뒤까지도 ‘최불암은 최불암’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고인은 국민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곤 했다. 서울 중앙중 시절 같은 반 짝꿍이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고인을 “굉장히 온화하고 애정이 깊은 성격”으로 기억했다.
고두심, 강부자, 차인표, 송승헌, 이제훈 등 동료 배우들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전 야구선수 박찬호 등 각계 인사도 고인을 배웅했다.
고인은 떠나기 전날 밤, 화면 속에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1일 방송된 KBS 1TV 특집 다큐 ‘밥상지기 최불암, 당신을 기억합니다’에는 지난해 1월 병원복 차림으로 병실에서 ‘한국인의 밥상’ 내레이션을 녹음하던 모습이 담겼다. “제가 오늘도 이렇게 길 위에 서 있게 되는군요. 이 길을 참 많이도 걸었죠.” 그 길에서 고인은 연탄을 나르던 노동자의 새까만 손을 꼭 쥐었고, 뼈마디가 휜 어부의 손을 “참 훌륭하신 손”이라며 어루만졌다. 아이들의 작고 여린 손을 잡았던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간으로 꼽은 고인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죠”라고 돌아봤다.
다큐는 고인의 목소리로 여운을 남겼다. ‘모든 순간이 선물’이라는 고백은 지난해 4월 ‘한국인의 밥상’ 700회 특집에서 프로그램과 작별하며 처음 건넌 인사다. 이제는 국민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됐다.
“웃어도 하루, 슬퍼도 하루 주어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저 묵묵히 그 시간을 살아갈 뿐이지요. 제게도 모든 순간이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shee@heraldcorp.com
![“세무서 이긴 아들의 효심” 어머니 모신 40년 덕분에 상속세 2억 지켰다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29/news-p.v1.20261029.9095c7d0d0cc41f1b579f587e921ac19_T1.png?type=h&h=240)
![“V자 반등은 없다” 실탄 아끼는 큰손들, 이번 폭락이 다른 이유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29/news-p.v1.20261015.bf346e259b1345f280b498eda7b41712_T1.jpg?type=h&h=240)
![창호도 ‘하이엔드’ 시대…재건축 시장에 프리미엄 승부수[그 회사 어때?-KCC]](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10/28/news-p.v1.20261006.6986af99ec4340659a06462b2dd32e55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