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김상수 기자]대학시절 멘토 같은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똑똑하고, 현명하며 항상 미소를 짓는 그런 선배다. 그 선배가 사주는 책은 뭔가 특별해보였다. 읽어보면 역시나 특별했다. 항상 책과 함께 하는 그 선배가 참 부러웠다. 열정적인 혁명가는 아니지만,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지식인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DNA가 달랐는지 난 과장된 웃음과 분노에 익숙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됐고, 그 선배는 지금도 출판사에서 책과 함께 한다고 한다.
후마니타스 책다방에 오면 마치 그 선배를 만나는 듯하다. 조용한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 열중한다. 책을 보고 화면을 보며 또 펜을 끄적이며 몰두한다. 무엇인가 남에게 말하려 알리려 애를 쓰기보다는 나를 먼저 돌아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유의 공간’, ‘아도르노’, ‘사랑 때문이다’, 지금 노트북 옆에 전시돼 있는 책들의 향기도 그렇다. 나를 봐달라고 과장하기보단 차분히 내 손길이 닿아주길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웃음보단 미소가 어울리는 북카페다. 그 선배를 닮았다. 상수동엔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는 사뭇 다르다. 출판사의 향기가 묻어나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BGM마저도 다 다른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인파가 늘어난 상수동에선 점점 여유와 사색이 힘들어진다(홍대의 소란이 상수동까지 다 점령했다. 연남동으로 가야할까?). 이런 상수동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 있다면 바로 북카페다. 특히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책과 함께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픈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후마니타스 책다방은 이름에서 보이듯 후마니타스 건물에 있는 북카페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북카페. 조용한 음악과 함께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게 하는 분위기는 말 그대로 북카페 같다. 카페 곳곳에 배치된 책 목록도 차분하다. 돈보다 삶이 중요하다고, 경쟁보단 연대가 소중하다는 문구가 몇번 내 삶을 곱씹게 한다. 샌드위치 등 책다방에 없는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도 허락할 만큼 친절하다. 단점은 워낙 인기가 좋고 마니아가 많아 좀처럼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점. 3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이건 기본적인 에티켓이니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빨간책방은 출판사 위스덤하우스가 운영하는 북카페. 인기 팟캐스트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아는 분이라면, 맞다. 여기가 바로 그 빨간책방이다.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녹음실이 카페 3층에 있고 공개방송에도 참여할 수 있다. 카페에서 책을 읽다 보면 건물을 오가는 빨간 안경의 이동진 씨도 자주 만날 수 있다. 후마니타스에 비해 다소 분위기는 ‘북’보다는 ‘카페’에 가깝다. 그래도 인상적인 디자인과 빨간책방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후마니타스의 각종 책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며, 음료를 주문하면 함께 제공하는 냅킨도 직접 디자인했을 만큼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다산북카페는 상수동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엔 한적한 골목길이었는데 이젠 밤낮 가리지 않고 인파가 가득한 인기 골목길이 됐으니 오가며 이 북카페를 접하는 건 어렵지 않겠다. 특이한 건 다산북카페는 24시간 운영이라는 점. 실제 새벽에는 가본 적 없으니 얼마나 손님이 많을 진 모르겠다. 낮밤이 뒤바뀐 올빼미족이라면 이곳을 애용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간판이 눈길을 끄는데, 이 이름은 백석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고. 다산북스의 책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자음과모음도 상수동에 카페를 운영하는데, 합정역으로 가는 메인 골목 옆에 있어 찾기 쉽다. 북카페 옆에는 항상 가판대에서 다양한 책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책의 종류도 다양해 오가는 길에 들려서 구경하기에도 좋다. 북카페는 상대적으로 인파가 많고 분위기는 다소 소란스러운 편이다. 조용하게 책을 읽고 싶은 이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도서관이 아닌 이상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겠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팥빙수도 상당한 내공을 갖추고 있으니 즐겨보시길.
책과 함께 한 일요일 오후, 잠시 고개를 들면 지나가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다시 숙이면 활자가 반갑다. 고개를 들면 들렸다가, 다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는 카페의 클래식도 따뜻하다.
6월 29일 어느 일요일 오후. 잊고 싶지 않은 이 순간이다. 후마니타스 북카페에서.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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