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ㆍ외교관ㆍ스포츠인 삶
서울올림픽, 한일월드컵 기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도 노력
[헤럴드경제=온라인뉴스]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3일 오전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6세.
김 전 부위원장은 전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가 3일 오전 2시 21분 별세했다고 고인 측이 알렸다.
김 전 부위원장은 연희전문대(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이 경찰의 실탄지원 요청을 거부하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인 1963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 참사관, 영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을 역임했다. 1965년에는 제20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스포츠계에 입문했고,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다. 이후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등에 기여한 한국스포츠의 큰 별이었다.
‘태권도계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세계태권도연맹(WTF) 창설했다. 특히 태권도가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능숙한 외국어와 폭넓은 대인관계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2001년에는 ‘스포츠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했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벌어졌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과정에서는 강원도 평창의 유치 ‘방해설’이 대두하면서 국회 청문회에도 출석했었다. 2004년 2월 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운영 과정에서 횡령 등의 죄목으로 수감돼 사실상 국제 체육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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