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텅 비우다’는 뜻의 바카씨오(vacatio)라는 라틴어입니다. 프랑스에 들어가 바캉스가 됐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제프리 초서의 운문설화집 ‘켄터베리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Hamlet)’에 휴가(vacation)로 쓰이면서 일반화됐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휴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들이 프랑스인들입니다. 1년 꼬박 돈 벌어 한 달 휴가 가는 재미로 산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휴가 떠나기 전에 가족보다 연인보다 더 애지중지하던 개, 고양이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를 보다 못한 영국인들이 제멋대로인 휴가를 ‘프랑스 휴가’라고 하고, 이에 발끈한 프랑스인들이 형편없는 요리를 ‘영국요리’라고 한다는 군요.
그런데 눈치안보고 휴가를 즐기는 이들은 정작 미국인들입니다. 빵 먹듯이 휴가를 쏘다니면서 돈은 언제 벌어 세계 최강 자리를 유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국민 누구나 할 것 없이 노는 데는 일가견 있어 보입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다 그랬고, 그 중 백미(白眉)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피격에 폭격에 지구촌이 난리 통인데 다음달 16일씩이나 미 동부 단골 휴양지로 가족과 떠난다고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 됐을 무렵에는 새까맣던 머리가 몇 년 새 하얗게 변한 것을 보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업무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짐작됩니다. 그래도 그가 늘 만면에 웃음을 머금는 것은 휴가를 앞둔 때문이라는 우스개까지 들립니다.
그를 보면 아무리 바빠도 쉴 땐 쉰다는 자세가 확고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게으르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의 근면성실 근성은 세계가 다 압니다. 놀 때 놀고 일할 땐 확실히 일하는 지도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바캉스 문화가 들어 온 것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쯤이라고 합니다. 포니승용차를 첫 수출하는 등 ‘무역입국’기치를 내걸고 새마을운동으로 국민모두가 한마음 하나 되어 “잘살아 보세”를 외치던 때입니다. 그 즈음 국민소득 1000달러고지에 우뚝 선 것입니다. 고도성장으로 생활이 윤택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나들이에 서서히 바다건너 세련된 바캉스가 접목된 겁니다.
삼복더위에 본격적인 바캉스 계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28일부터 닷새 동안 휴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휴가 내내 청와대 경내에만 머물겠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아직 덜 수습된 데다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이 적지 않은 때문일 겁니다. 지난해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경남 거제에 있는 ‘저도’에서 보낸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 곳 모래밭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쓰며 10대 소녀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여름휴가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힘들고 길었던 시간들...휴가를 떠나기에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이라는 글로 관내 휴가에 대한 소회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힘들었던 시간 동안 밀린 많은 일들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심경도 토로했습니다. 말이 휴가지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참모들도 줄줄이 대기상태인 모양입니다.
힘들수록 여유가 필요합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인데 염천(炎天)아래 청와대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모습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휴가는 국정의 윤활유나 다름없습니다. ‘미국답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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