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금융클래식 우승 축하 꽃잎 세례받는 박성현.
지난 2016년 한화금융클래식 우승 꽃잎 세례받는 박성현.[사진=KLPGA]
박상현우승트로피
박상현이 지난 2018년 신한동해오픈 등 시즌 3승을 거뒀다. [사진=신한금융그룹]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역대 한국 남자 투어에서 시즌 최다 상금을 기록한 해는 2018년 박상현의 7억9066만원, 여자는 2016년 박성현이 기록한 13억3309만원으로 조사됐다. 박상현은 2018년 시즌에 메이저인 신한동해오픈에 매경오픈을 포함해 3승을 거두었다. 박성현은 2016년에 최다 상금액이 걸린 한화클래식을 포함해 7승을 쌓았다. 이해 받은 상금은 국내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은 액수다. 남자 투어에서 한 시즌 역대 상금 2위는 2017년 신규 창설된 제네시스챔피언십과 매치플레이 우승자 김승혁이 받은 6억3177만원이었고, 여자 투어의 상금 2위는 2014년 한국여자오픈을 비롯해 6승을 쓸어담은 김효주가 받은 12억897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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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국내 남녀 투어 역대 시즌 상금왕.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상금 집계는 1978년부터 시작해 43년간 진행해왔으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4년 뒤인 1982년부터 매년 상금 수치를 계산해오고 있다. 1978년 처음 집계한 KPGA투어 상금왕은 356만원을 받은 최상호였다. KLPGA투어는 1982년 상금왕 구옥희의 125만원에 불과했으나 40여년 만에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남자 시즌 상금액이 1천만원을 넘긴 해는 1982년, 1억원을 넘긴 해는 1990년 이강선의 1억3764만원이었다. 이후 IMF구제금융 시기인 1998, 1999년은 1억 미만으로 내려갔으나 빠르게 회복했다. 시즌 상금왕에 가장 많이 올랐던 선수는 통산 43승을 기록한 최상호로 9번(1978~1995년)이었다. 그 뒤로는 최광수가 4시즌을 상금왕에 올랐다. 여자 투어에서 1988년에 처음으로 상금왕이 1천만원을 넘겼고 1996년에 박세리가 2억4268만원을 기록하면서 억대 상금을 기록하게 됐다. 시즌 상금왕을 가장 많이 한 선수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4년 연속 상금왕을 한 고우순이다. 그 뒤로 신지애, 정길자, 이오순이 세 번씩 시즌 상금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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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년간 남녀투어 상금 10위, 50위의 상금액 변화

여자 투어의 상금왕은 초기에는 남자보다 작았지만 2006년 이후로는 남자 상금액을 능가했다. 1982년 남자 상금의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이후 여자 골프는 빠르게 성장했고 2016년은 남자 상금왕의 3배를 넘었다. 지난 2000년 이후 시즌 상금왕의 평균 상금에서도 남자는 4억원을 넘겼으나 여자는 6억3천만원을 넘긴 금액이었다. 지난 2020년은 힘든 한 해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취소되는 대회가 무수하게 쏟아졌다. 대회수도 는 4월 개막전부터 한국오픈까지 줄줄이 5개가 취소됐다. 역시 국내외 개최 예정이던 17개 대회가 취소됐다. 대회가 취소되면서 상금액도 줄었다. 애초 129억원의 14개 대회를 예상했던 KPGA는 신설 대회 포함 11개 대회를 94억원 규모로 열었고, KLPGA는 31개 대회에 270억원 규모를 추진했으나 18개 대회 175억원에 그쳤다. 남자 투어의 상금 1위 선수는 제네시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3억원을 받은 김태훈이 4억9593만원을 쌓았고, 여자 투어에서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다가 국내 무대를 뛴 김효주가 7억9713만원을 벌었다.

한편, 지난 11년간 남녀 투어 상금 10위의 상금액을 보면 평균 금액이 남자는 2억1012만원이었고, 여자는 3억7137만원으로 높았다. 그중에 가장 높았던 해는 남자는 2017년 박상현의 2억8383만원, 여자는 2019년 이소영의 5억3750만원이었다. 남녀 투어 상금 50위 선수의 상금을 비교해 보면 남자는 평균 5545만원이었는데 비해 여자는 9924만원으로 차이가 더욱 커졌다. 가장 높았던 금액은 남녀 모두 2018년이었으나 역시 남녀 차이가 컸다. 여자 대회수가 남자보다 많고 상금액이 꾸준히 증가한 것이 세계 추세와 역행하는 비대칭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