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짐승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하려고 하지만 사람은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하는 특성이 있어 도와준 사람을 배신하니 경계하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돌려 생각하면 입양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정인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그 속담이 생각났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검찰 송치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세초 한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이 정인이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재조명하면서, 해당 사건의 참혹함은 다시 사람들의 마음과 일상 속으로 돌아왔다. 사건을 다시 마주한 대부분은 채 500일도 안 됐던 정인이의 짧디짧은 삶을 자신의 아이의 일인 양 슬퍼했다. 수사 결과 학대를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양부와 양모에 대한 분노도 드러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근 식사 약속이 줄어든 바람에 ‘혼밥’을 하러 갔다가 귀로 들어온 멀리 떨어진 한구석 테이블의 두 여성 간 대화였다. 한 여성이 먼저 “시어머니가 몇년 전 내 아이를 돌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더라”며 ‘세 살배기가 얼마나 미운 짓을 하던지, 피붙이만 아니면 진짜 한 대 때리고 싶었다고 하시더라’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 여성의 대답이 안타까웠다. “그러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닌 정인이 엄마(양모)라는 여자도 그랬을지 모르지.”
왜 두 사람의 이야기의 맥락이 양부모의 학대가 아닌 정인이가 입양아라는 사실로 흐르는 것일까. 정인이 사건의 본질은 입양 문제가 아닌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일 텐데 말이다. 이 글 서두에 적은 속담도 두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것이다. 입양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정인이의 죽음을 더욱 황망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의 글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011년 입양한 딸을 키우고 있는 김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인이 사건을 볼 때 누가 가장 가슴 아플까. 아마 입양가족일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2019년 아동학대 행위자 유형 중 친생부모 비율이 72.3%나 된 반면 양부모(민법상 입양 포함) 비율은 0.3%에 불과했다’는 보건복지부 자료도 공개했다.
“입양 절차에 대한 관리·감독뿐 아니라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입양가정에 대한 조사 강화를 지시한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전국입양가족연대도 역시 지난 5일 성명에서 “정인이 사건 후 우리는 입양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죄인이 돼야 했다”고 밝혔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집단이며 특히 아동의 발달과 행복을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이다. 아동은 부모에게 양육받을 기본 권리가 있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조항도 있다. 대부분 입양가정은 정말 큰마음을 먹고 ‘가슴으로’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있다.
정인이 사건이 자칫 ‘머리 검은 짐승’이라는 선입견을 키워 입양, 특히 국내 입양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까 걱정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해외 입양 비율이 최고 수준이다. 2018년 발표된 ‘미국에 입양 오는 아동의 출산국’ 중 우리나라의 순위는 부끄럽게도 아직 5위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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