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마을을 통해 본 진정한 집의 가치
[헤럴드경제=민성기 기자] 집의 존재 가치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를 뜨겁게 달군다. 집이란 그저 재산 증식의 한 수단일까. 누구도 그렇게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쉽게 부인하지는 못한다. 과연 우리에게 집이란 어떤 존재일까.
포르투갈의 한적하지만 오래된 마을,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과 그 중심에 있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느릿느릿 복작복작(효형출판)〉. 이 책은 포르투갈 남동부의 이름조차 생소한 알란테주의 작은 마을 알비토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인 라정진 씨는 참 독특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동티모르 소재 NGO에서 일하던 도중, 포르투갈 남편과 만나 한국과 동티모르, 포르투갈을 오가고 있다. 비록 아이 둘이 생긴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이전처럼 왕래가 쉽지 않아 동티모르에서만 머물고 있다. 그래도 2년 전까지만 해도 1년 중 4~5개월은 한국과 포르투갈에서 지냈다.
대구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 살아온 라 씨. 그는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이른바 '도시녀'였다. 그러나 남편인 알베르토와 만나 4년 간 동티모르의 시골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시골 생활에 발을 디뎠다. 라 씨는 그 이전에 모로코, 프랑스 등 해외 생활을 통해 국제적 빈곤, 도시 생활의 비인간성을 몸소 체험했다고 했다.
"속된 말로 도시 생활에 기가 빨린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그에게 포르투갈의 시골 집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라 씨에 따르면 포르투갈 역시 리스본, 포르투 등 큰 도시는 부동산 거래나 투자가 상대적으로 활발하고 서울 만큼은 아니지만 집값 상승 역시 가파르다. 그렇지만 모두가 '내 집 마련'에 그렇게 까지 목메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 포르투갈 친구들 중, 집이 있는 친구들은 부모님께 물려 받았거나, 아니면 은행 대출로 집을 ‘사고 있는 중’이거나 ‘이미 산 경우’ 입니다. 집이 없는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아직 어디에 정착할 지 몰라서 안 사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공통적인 점은 집에 대해 그렇게 안달복달 하지 않아 보인다는 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를 통한 인생역전이 사실상 흔치 않고, 한편으론 웬만큼 대출이나 장기 상환으로 집을 살 수 있기도 하고,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권리가 잘 보장되니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 씨는 특히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그저 재산 가치를 늘리는 데에만 있지 않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집이 가족을 서로 따스하게 보듬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포르투갈에서는 돈 없고 내 소유의 집이 없다고 한들, 생활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 집이 어떤 투자 대상보다는 본래의 기능, 즉 ‘사는 곳’에 좀 더 자연스럽게 충실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알비토의 시골 집에서 라 씨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가족들과의 삶이 따스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조할아버지가 남긴 손때 묻은 흔적이 대대로 이어져 오는 집은 '한 가족의 연대기'라고 말한다.
"개인이 파편화 되지 않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족들, 그 중심에는 집이 있습니다."
라 씨가 꼽는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가족 산책이다.
"매일 아침이면 아버님과 어머님이 오셔서 동물들을 챙기시는데, 우리 가족도 같이 따라가곤 합니다. 그럴 때면 첫째 아이가 중간에 껴서 종종 걸음으로 걷고 남편과 아버님이 양 옆에 서서 아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춰 같이 걷지요. 그러면 저는 한걸음 물러나 그 뒷모습을 지켜보곤 합니다."
"전 그럴 때마다 한 가족이 이어 내려오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느낍니다. 아이가 태어나 돌봄을 받고, 부모가 되고, 다시 늙어서 줄어드는 모습이 한 장면에 담기는 거죠. 백 년 넘은 집과 그보다 더 오래 되었을 올리브 나무들을 배경으로요."
물론 포르투갈의 시골 마을도 한국처럼 노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라 씨는 알비토 정착을 고민 중이란다. 그래도 대도시 생활 보다는 작은 소도시, 혹은 조그만 마을 그 어딘가에서 남편, 아이들과 함께 할 삶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집일 것이다. 한적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포르투갈 시골 마을 알비토의 일러스트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 책은, 가볍게 읽기에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읽고 내려 놓을 때는 묵직함이 잔잔히 감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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