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용구 전 차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송치

택시기사 증거인멸 혐의 송치…“참작 사유 기재”

블랙박스 영상 본 서초서 수사관, 특수직무유기 혐의

서초서 팀장·과장 관련 혐의, ‘경찰 수사 심의위’ 회부

통화내역 8000여 건 포렌식…“외압·청탁 정황 없어”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사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사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김지헌 기자] 경찰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택시기사에 대해서는 이 전 차관의 폭행 영상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은 9일 오전 이 전 차관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택시기사 A씨는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법리상 택시기사의 입건과 송치가 불가피하다고 결론내렸다”면서도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고, 이 전 차관의 요청에 따랐다는 양형 참작 사유를 충분히 부기하겠다”고 설명했다.

블랙박스 본 서초서 수사관 특수직무유기 혐의 송치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 당시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관에 대해서는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충분히 수사가 이뤄졌어야 하지만 지휘 라인에 보고하지 않은 점, 해당 영상에 대한 압수나 임의제출 요구 등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수사관 외에 지휘 라인에 있는 서초서의 서장, 형사과장, 사건 담당 팀장에게는 특수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블랙박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고 고의가 확인되지 않은 등 혐의가 불명확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팀장과 형사과장의 특수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경찰 수사 심의위원회’를 열어 회부하기로 했다. 서장은 경찰 수사 심의위원회에 회부할 정도의 객관적 혐의가 없어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특수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된 수사관은 경찰 수사 심의위원회 요청을 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 심의위원회는 주요 수사 정책에 관한 자문·권고, 주요 사건 등을 심의하기 위해 국가수사본부와 각 시·도경찰청에 설치됐으며 10~15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다. 경찰 수사 심의위원회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공개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사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강일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사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진상조사단은 서초서의 서장, 형사과장, 팀장, 수사관 모두 사건 처리하던 당시 이 전 차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사실을 알고 있던 것으로 확인했다. 서장은 서초서 생활안전계장으로부터 보고 받았고, 형사과장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전 차관의 신분을 인지한 뒤 수사관과 팀장에게 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들은 이 전 차관 사건을 내사 종결한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도 서울청에 “평범한 변호사로 알았다”고 보고했다. 범죄수사규칙상 ‘보고 대상 사건’이지만 보고 의무를 위반했고 사건 처리에 대한 지휘 감독 역시 소홀했기 때문에 형사 처벌과 별개로 당시 서초서의 서장, 형사과장, 담당 팀장에 대한 감찰조사는 진행될 예정이다.

통화내역 8000여건 포렌식 분석…“외압·청탁 정황 없어”

이 전 차관의 수사 외압 이나 청탁 의혹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단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11월 6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 전 차관과 서장 등 인물의 통화내역 8000여 건을 분석했다.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이 담당 수사관 외에 전·현직 경찰관과 통화한 내역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차관과 통화한 상대방들도 이 시기 서초서의 담당 수사관이나 팀장, 형사과장, 서장과 통화한 내역이 없던 것으로 분석했다.

진상조사단은 이 차관과 통화한 상대방 중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는 57명을 선별해 통화 사유와 사건 개입 여부 등도 확인했다. 이 전 차관이 청와대나 법무부 관계자와 통화했다는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이 전 차관과 통화한 사람의 신분이 어떻든 간에 확인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진상조사단은 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11월 6일부터 내사가 종결된 같은 달 16일까지 사건 내용이 서울청 수사부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초서 생활안전과 실무자를 통해 서울청 생안계와 서초서 정보과에도 전파된 사실이 있으나 각각 보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실무 담당자들 사이에서 의견 교환 성격으로 상급 기관으로 보고서가 작성된 적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전 차관은 변호사 신분이던 지난해 11월 6일 술에 취해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 A씨의 멱살을 잡고 폭행한 후 이틀 뒤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A씨에게 요청했다.

이와 관련 지난 1월 한 시민단체가 이 전 차관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 2월 중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돼 수사가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