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2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3
세계적으로 희귀한 클래식 카들이 퍼레이드를 벌이는 현장, 그 퍼레이드가 지나가면 드디어 5개국을 관통하는 랠리 카들이 뒤꽁무니에 불을 뿜으며 달려 나가게 될 역사적인 현장. 하지만 유민 회장은 그 일생일대의 명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 감동을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지 못하다니…원통하기 짝이 없군.’
유민 회장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더 이상 어쩔 재간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비행기를 전세 내어 날아가고 싶었으나…선거! 코앞에 닥친 대통령선거가 그를 옴쭉달싹 못하게 잡아 매놓고 있었다.
선거 닷새 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 결과가 63%로 상대방보다 훨씬 앞서있었다. 그러나 그 후 나흘 만에 10%가 하락해서 이제는 박빙의 대결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사안은 5개국 관통 랠리대회 뿐이었다. 태극문양을 새긴 로열골드가 당당히 선두를 달리며 북한 영토로 들어서는 모습에 온 국민이 열광하는 순간 지지율이 10% 이상 뛰어오를 것임을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북한이 순순히 문을 열고 랠리 팀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 우리 호성이가 랠리를 뛰도록 내버려둘 걸 그랬어. 그 녀석이라면 당당히 1등으로 달려 들어올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아드님 건강이 우선이지요. 고산지대를 넘다가 사고라도 났다면 더욱 큰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 이제 와서 후회한 들 뭐하나. 우리 호성이 대신 권도일 전무가 선두로 달려오길 바랄 뿐이지. 조바심이 나서 미치겠군.”
유민 회장은 끈끈하게 땀이 배어나오는 손바닥을 바지자락에 문질러대고 있었다. 그의 뒤에 나란히 서서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임원도 조바심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만약 유민 회장이 지지하는 대선주자가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다면 유민그룹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민그룹이 도산하게 되면 임원직을 맡고 있는 본인들도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 아닌가.
“호성이 녀석이 고산증세만 견딜 수 있었더라도 랠리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고…그랬다면 선거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테고…높은 양반께서 대권을 잡는다면, 우리 유민그룹도 앞날이 창창할텐데 말이지. 으흠!”
“조금만 더 기다려보십시오, 회장님. 꿩 대신 닭이라고, 곧 권도일 전무가 로열골드를 몰고 선두로 달려 들어올 겁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유호성 군은 해발 24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선 견뎌내지 못하잖습니까. 애초에 경기 초반부터 고지대를 넘도록 코스를 정하시고, 아드님을 포기하도록 하신 건…아드님의 건강을 위해 내린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의자 뒤에 도열해 서있는 임원들은 이렇게 유민 회장을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민 회장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아들을 위하는 일이라고…랠리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은행 융자까지 내가며 하루 밤에 70억원이란 거금을 쏟아부은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진시왕릉 앞마당에 제1포스트를 정해놓고 단 하루 밤 동안 이벤트를 벌이기 위한 돈 30억, 주차장 옆에 진열해 놓을 모조품 병마용 구입비 10억, 랠리 카와 클래식 카 주차를 위한 비용 10억, 조명ㆍ레이저빔ㆍ폭죽 구입비 10억…그 돈을 당장 구해오라며 은행으로 내쫓을 때는 언제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아들이 랠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건 무슨 변덕인지.
“아니, 저건 또 뭐야? 저 놈…저 놈은 내 아들, 호성이 아냐?”
텔레비전 앞에서 한동안 조바심을 내던 유민 회장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유민 회장의 뒤에 도열해 있던 임원들도 순간 우르르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들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랠리 중계에 앞서 클래식 카 퍼레이드가 벌어지던 중이었는데, 뜻밖에 중국 영업용 택시 넉 대가 화면 속으로 들이닥쳤던 것이다. 거기까지 괜찮았다. 잠시 후 화면이 클로즈업되는가 싶더니 돌연 유호성의 모습이 커다랗게 부각되는 것이었다.
유민 회장은 외마디 소리를 내뱉으며 뒷목을 부여잡고야 말았다. 웬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가 골프공을 받쳐 든 채 납작 엎드려 있는 녀석은…바로 유호성이기 때문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요즘 ‘큰손’들은 주식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11월 3일’부터 본다, 왜?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6.97fcdbca4f2c4562acc488b50990cb2d_T1.jpg?type=h&h=240)

![못 믿을 AI기업…검증하고 평가받게 하라[머브 히콕]](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3.2391f1fe070840f39f8da5e471902ef7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