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천번의 괴롭힘보다 고통스러운 ‘이미지 불링’
은밀한 부분 사진 동급생에 뿌려 사과는커녕 되레 수치심만 더 줘 혹시 부모가 알까봐 상담도 못해 장난으로 치부 하기엔 도 넘어서
“또 울었어요. 저 정말 죽고 싶어요.” 최명실(15ㆍ가명) 양은 경남 지역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다. 최 양은 지난달 21일 같은 반 친구의 카톡(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에는 금세 눈물방울이 맺혔다. 공개된 친구의 프로필 사진란에는 최 양의 ‘엽사(엽기사진)’가 올라와 있었다.
엽사는 최 양을 비롯한 3명의 얼굴 사진에 심한 포토숍 장난을 덧칠한 것이었다. 제목은 ‘울 학교 돼지X들’이었다.
최 양은 친구에게 “사진 좀 지워줬으면 좋겠어”라고 카톡을 보냈지만 “왜? 멋지지 않냐?”라는 답만 돌아왔다. 사진은 금세 학교에 퍼졌고, 최 양 엽사를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 괴롭힘에 동참하는 친구도 하나 둘 늘어났다.
최 양은 열린의사회가 운영하는 청소년 학교폭력 상담프로그램 ‘상다미쌤’ 상담에서 “죽고 싶다”는 말부터 했다. 평소 아이들의 따돌림을 꾹 참고 있던 터에 이번 카톡 사건까지 겹치면서 최 양은 학교생활을 무척 버거워하고 있다.
학교 상담 권유에 대해 최 양은 “학교 상담을 하면 아이들이 뭐라고 할 거예요. 담임선생님이 알아도 일만 커질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외부 상담센터에 엄마랑 함께 갔었는데 엄마가 너무 마음 아파하는 걸 봤어요.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아요”라고도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SNS에서 벌이는 여러 사이버 학교폭력 유형 가운데 최 양이 겪은 것은 ‘이미지 불링(image bullying)’이다. 이미지 불링은 사진ㆍ동영상 같은 이미지를 활용해 상대방을 괴롭히고 모욕감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상다미쌤’에 접수된 사이버 학교폭력 사례 621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19.6%(122건)가 SNS를 통한 ‘이미지불링’이었다. ‘사이버 비방’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높다. 연령별로 초등학생이 57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생(35건), 중학생(30건) 순이었다.
현재 필리핀 유학 중인 장수영(16ㆍ가명) 군은 벌써 1년6개월이나 지난 옛날 일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친구 여럿이 몰려가 친구 집에서 함께 잠을 잤는데, 한 친구가 자신의 성기 사진을 찍어 SNS로 퍼뜨린 사건 때문이다.
“남자들끼리 그런 장난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난 후에 사진을 지우면 그만이죠. 하지만 사진이 여자 아이들한테까지 다 퍼졌어요.” 장 군은 당시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장 군은 그러나 사건 한 달 후 유학을 와 철이 들면서 뒤늦게 수치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 친구들 만나기가 꺼려진다”며 “올여름 방학 때 친구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더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버 학교폭력 폐해가 심각해 단순히 아이들 간의 ‘사진 장난’으로만 치부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여주 한국교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 청소년들은 직접 만남보다 사이버 공간을 만남의 장(場)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사이버 폭력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며 “특히 대량 복사ㆍ유포되는 온라인 특성상 한 번의 괴롭힘이 수천 번의 괴롭힘과 똑같게 된다”고 말했다.
최진오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는 “기존 학교폭력은 상대방이 고통당하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가해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사이버 상에선 상대방이 얼마나 타격을 받는지 가해학생이 전혀 볼 수 없어 폭력이 한계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교육부가 발표한 ‘201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2차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 중 65%가 사이버 폭력을 가장 심각한 형태의 학교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