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철이
조폭에 휘말려 파멸하는 내일 없는 밑바닥 청춘. 많이 봐 왔다. 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게임의 법칙’의 박중훈이 있었다. ‘친구’의 장동건도,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20여년간 ‘조폭+청춘+부산사투리’는 한국영화를 풍미한 흥행공식이었다. 어쩌면 당대의 청년세대가 직면하고 통과한 폭력과 억압의 권위주의 시대를 반영한 서사였는지 모른다. 그만큼 친숙하고 울림이 있었지만, 이제는 낡고 오랜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 ‘깡철이’(감독 안권태·사진)의 출발도 선배영화들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안간힘을 쓰며 비극을 비켜가는 방식으로 다른 종착역을 향해 간다. 그 무기는 내일 없는 현실의 비극성이 아니라 청춘 특유의 낙천성이다. 그러므로 ‘완득이’에서 가난의 절망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건강한 활력과 유쾌한 긍정으로 살아내는 주인공 역할의 유아인을 주연으로 기용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강철’, 깡 하나로 버틴다고 ‘깡철이’로 더 많이 불리는 주인공은 부산의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면서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의 곁에는 당뇨에 신장질환 등 온갖 병에 치매까지 겹쳐 한시라도 홀로 둘 수 없는 어머니(김해숙 분)가 있다. “세상이 언제 우리 편인 적이 있었냐”는 스스로의 말대로 한 번도 자신에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의 얼굴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 아들이 일하는 사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높은 목욕탕 굴뚝 위로 올라가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깡철이는 불평 한마디 없이 늘 그래왔다는 듯 직접 굴뚝 위로 올라가 어머니를 데리고 내려온다. 아들을 늘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는 어머니.
깡철이는 때로 돌아가신 아버지도 됐다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들도 됐다가 어머니에게 살가운 웃음을 잃지 않는다. 부두에 있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매여 살아야 하는 고달픈 인생이지만, 어느 날 서울에서 여행 온 자유분방한 성격의 ‘수지’(정유미 분)를 만나 살풋 설레는 만남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 수술비용과 친구의 빚 때문에, 깡철이는 그토록 경계하던 조폭의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정직한 노동으로 내일을 꿈꾸었지만 세상은 깡철이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본의 야쿠자와 거래하던 부산지역 조폭 ‘상곤’(김정태 분)은 깡철에게 위험한 거래를 제안하고, 깡철이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영화에서 깡철이를 도와주는 친구의 아버지(송영창 분)는 “착한 끝은 있다”고 말한다. 영화는 조폭 액션영화의 공식대로 음모와 액션, 반전을 펼쳐가지만, 깡철이는 여느 비극적인 청춘과는 달리 ‘한탕주의’에 대한 집착도, 남을 해하고 올라서려는 욕망도 없다. 씩씩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돈을 번다. 자신의 운명을 탓할 법도 하지만, 어머니에게도 늘 지극정성이다. 어쩌면 ‘잃어버린 순수’로서의 깡철이는 젊은 세대들을 향한 기성 세대의 바람이자 기대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적절한 액션과 함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제법 잘 엮어 보는 재미를 준다. 유아인의 건강한 활력과 김해숙의 농익은 연기, 김정태 등 조연들의 감칠만 나는 추임새도 즐길 만하다. 2일 개봉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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