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봉화] 요염한 기생의 노래가 절정을 향하고 호남 12읍 수령이 얼큰히 취해 갈 즈음, 한 걸인이 불쑥 연회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범하게 술 한 잔까지 청했다.

“네 이 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알고? 네 놈이 시를 지을 줄 알면 함께 어울려도 좋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당장 돌아갈지어다”

불호령이 떨어지자 걸인이 붓과 종이를 청해 한 수 읊는다.

“樽中美酒 千人血 (준중미주 천인혈 : 동이 안의 맛있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盤上佳肴 萬姓膏 (반상가효 만성고 : 소반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며)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락시 민루락 : 촛물 떨어질 때에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 원성고 :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높도다)“

시를 본 수령들의 눈이 휘둥거래질 즈음 “암행어사 출두야” 외침 속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춘향전 같은 춘향전 이야기다. 하지만 이 걸인의 시는 춘향전 작품이 나오기 100여년 전 지어졌다.

훗날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존인물이 지은 시다. 이 시는 실존인물의 현손(玄孫)의 문집에 고스란히 기록돼 온다.

그 훗날의 춘향전이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남원부사 아들 이몽룡과 퇴기 월매의 외동딸 성춘향이 사랑에 빠진 후 이별해야 했고 새로 부임한 사또 변학도가 수청들지 않는 춘향을 옥에 가두고 고초를 가한다. 이때 서울간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출두하면서 변 사또를 파직하고 춘향과 백년해로한다는 내용이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소설이자 판소리 줄거리다. 춘향전은 판소리 12마당의 하나로 영조와 정조(재위 1724~1800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할 뿐 작자와 정확한 연대가 미상으로 전해왔다. 특히 국문소설로는 판소리로 불려진 이후 나왔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러브스토리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 하니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가장 ‘소설 같은 러브스토리’ 춘향전 이야기, 이 실존인물을 따라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몽룡은 1639년 실제로 호남 암행어사로 내려간 성이성(成以性)이다. 선조 28년(1595년) 경북 봉화(당시 영주)에서 태어나 현종 5년(1664년)까지 살다 간 청렴한 선비였다. 춘향전 작품이 등장하기 보다 적어도 100년 이상 이전에 살았다.

성이성은 13살(1607년)에 남원부사로 부임받은 아버지 부용당 성안의(成安義)를 따라 남원으로 갔다. 1차 임기를 마치고 연임해 남원에서 4년을 보내면서 어엿한 청년기를 맞았다. 17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광주목사로 전근하면서 남원에서의 생활은 끝난다.

청소년기 남원에서의 4년, 성이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광주로 내려간 두 부자는 당시 광해군의 어지러운 세상, 미련없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의 집에서 성이성은 학문에 정진했고 22살에 경시(京試), 33살에 식년 문과 급제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두 차례 경상도, 충청도 암행어사를 거쳐 세 번째 암행어사로 부임받은 성이성, 마침내 남원을 떠난지 28년만인 1639년(45살)에 호남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간다.

이곳에서 성이성은 어린시절의 스승 산서 조경남(趙慶男ㆍ1570~1641) 장군을 만나 광한루에서 밤새도록 회포를 푼다. 술잔을 기울이던 성이성이 옛 추억이 떠올라 스승에게 춘향이와 사랑을 나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묵묵히 듣고난 스승 조경남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꾸민다. 성이성의 이름은 이몽룡으로, 그리고 그의 성(姓) 성(成)씨는 춘향에게 붙여 성춘향으로 등장시켰다. 당시 양반이 기생 집안과 사랑을 논했다간 큰일 날 시대였으니 성과 이름을 바꿀 수 밖에. 하지만 춘향의 성에 그 흔한 성들을 두고 굳이 성(成)씨로 한 것은 성이성이 이 이야기의 주인임을 암시하게 한 것.

여기까지 과정의 이야기는 성이성의 저서 ‘계서유사(溪西遺事)’와 후손들의 문집에 전해온다. 그런데 근래에 이가은 교수 등 대학교수와 남원에서 온 인사들이 계서유사를 빌려가 중요한 몇 페이지가 찢겨 나갔다. 이가은 교수도 이 사실을 나중에 인정했지만 결국 돌려주지 못하고 작고했다. 생전에 그는 성이성이란 인물이 이몽룡이 맞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찢겨나간 이 책은 현재 성이성의 13대손 성기호 선생의 아들이 보관하고 있다.

조경남 장군은 조광조의 후손으로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무찌른 무인이자 난중잡록, 속잡록 등 저술도 많이 한 다재다능한 남원의 인물이다. 성이성이 어린시절 남원에서 보낼 때 스승이 되었다. 조경남은 13살에 난리를 예견해 일기를 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한국 최고의 로맨스소설이자 4대 국문소설의 하나인 춘향전의 모델 성이성의 실화가 35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건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다. 창녕 성(成)씨 양반가문에서 기생과의 사랑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건 큰일 날 일이었기에 이 사실을 숨겨왔다. 그러던 중 한 대학교수의 열정으로 베일을 벗었다. 지난 1999년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근거의 핵심은 성이성 본인의 일기를 후손이 편집한 ‘계서선생일고(溪西先生逸稿)’와 성이성의 4대손 성섭(成涉ㆍ1718~1788)이 지은 ‘필원산어(筆苑散語)’에서 나왔다. 설 교수는 또 조경남 장군이 죽기 1년 전인 1640년에 자신의 잡록에 소개했던 이 ‘암행어사 시(詩)’를 주제로 부각시켜 춘향전을 창작했다고 말했다.

성섭은 필원산어에서 “우리 고조께서 수의어사로 호남의 한 곳에 이르니 12읍 수령이 큰 잔치를 베풀어 술판이 벌어지고 기생의 노래가 한창이었다”고 기록했고, 이어 걸인으로 연회장에 들어가 시를 짓고 암행어사 출두하는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조경남은 성이성의 어린시절 춘향과의 러브스토리와 암행어사로 호남고을에서 직무를 수행 중 마주친 12고을 수령 이야기를 함께 연계해 작품을 엮었다.

현존 옛 기록이 이러하다니 이몽룡과 성춘향의 실존인물이 누구였든, 아니면 가공인물이었든 간에 성이성의 행적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이몽룡임에 틀림없겠다.

(‘이몽룡 생가 봉화 계서당②’에서 계속)글ㆍ사진=남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