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위기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후폭풍에 신흥국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환율과 금리가 오르고 주식은 급락했다. 신흥국에서는 1997년 한국에서의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가깝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연도 우려된다. 이미 신흥시장에 대한 선호도가 금융위기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이런 가운데 3일 밤 미국에선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미국의 지난달 1월 제조업지수가 지난해 5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이 자국 경기가 견조한 회복세를 보인다며 신흥국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테이퍼링을 단행했는데, 경기가 나빠졌다는 지표가 나와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테이퍼링 단행→신흥국 금융위기→동유럽 등 주변국 확산’에 ‘G2(미국ㆍ중국) 위기→글로벌 경제 동반하락’의 부정적 시나리오가 겹쳤다. 세계경제의 양대축인 G2마저 흔들리면서 세계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불난 집(신흥국)의 불을 꺼줄 소방수(미국)마저 없어질 상황이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위기를 맞은 다른 신흥국들과는 차별화를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상수지 흑자(2013년 말 707억달러), 외환보유액(3465억달러), 단기외채비중(32.20%) 등 거시경제측면에선 그렇게 볼 수 있다. 달러가 없어 장롱 속 돌반지까지 내다 팔았던 IMF 외환위기를 생각하면 분명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위기다. 부정적으로만 봐서도 안 되지만 바로 봐야 한다.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우리 집이 아무리 튼튼히 지어져 있다고 한들 소용없다. 금융시장은 불안감의 전이속도가 무서울 만큼 빠르다. 특히 가장 민감한 증시와 환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위태위태하던 코스피는 4일 장을 열자마자 1900선 아래로 급락했다. ‘신흥국 금융위기, 중국 경기 둔화, 미국 경제 불안’의 3중악재가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관건인 외국인의 팔자세는 더욱 무섭다. 외국인은 올 들어서만 2조원 넘게 팔았다. 외국인의 지난 한 해 순매수 규모(3조4000억원)의 절반을 넘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외국인의 매도 가능물량을 최대 6조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증시는 여전히 신흥국이다. 외국인이 달러자금을 거둬들이면 한국시장에서도 예외없이 팔아야 한다. 외국인은 신흥국을 하나의 묶음으로 볼 뿐, 나라 이름은 개의치 않는다. 이미 지난해 12월 19일 미국의 테이퍼링 결정 이후 지난달 말까지 외국인의 자금이탈은 한국이 8억달러로 아시아신흥국 중 가장 컸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우량주가 많은 한국 기업 주식은 현금화하기도 쉽다. 우리가 거시경제지표만 보고 자위하고 있으면 안 되는 이유다. 특히 증시가 어떤 재료보다도 수급에 가장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외국인 매도는 한국 증시에 최대 악재다. 한국이 신흥국 우등생이고 다른 글로벌 기업보다 국내 기업들이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 메리트가 있다고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보다 냉정한 판단과 냉철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는 위기다.

권남근 금융투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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