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이 전국 곳곳에서 ‘투망식 처방(기준치 이상의 약을 처방하고 약제비를 청구)’을 한 병원과 소송전을 겪고 있는 가운데, 병원의 책임을 80%로 제한하고 공단 측이 20%를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등장했다.
12일 서울 서부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고충정)은 공단과 학교법인 영남학원 간 진행된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에서 공단에게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영천병원에 환수금의 20%에 해당하는 약 31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80%에 해당하는 약 580만원은 영남대학교 병원 측이 지급한다. 법원 측은 “병원은 지난 2006년 2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해 공단에 손해를 입혔지만 이로 인해 금전적 이득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고 측의 책임을 80%로, 공단의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공단은 의료기관의 부적절한 처방으로 인한 부당한 약제비가 지급된 경우 의료기관에 책임을 물어 과잉 처방금액을 환수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처방했다가 환수조치된 원외 처방 약제비는 매해 약 300억원 안팎이다.
하지만 최근 의료기관이 “약제비 처방으로 돈을 버는 건 약국인데 병원에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하다”며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단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병원과 송사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2012년 이와 관련해 공단이 겪고 있는 송사는 약 300여건이며 이중 병원으로부터 피소당한 건수만 74건 이상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법원에서 약제비 환수와 관련한 법적 근거가 미약해 의료기관이 과잉처방으로 원인을 제공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금전적 이득을 본 건 의료기관이 아닌 약국’이라며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단은 병원 측이 소송을 제기하면 이를 상계하고 약국에 다시 책임을 묻는 방식의 이중행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법원이 병원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100% 묻지 못하는 것은 관련법이 이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은 약제비 환수 대상을 ‘요양급여비용을 받은’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병원 측에 항변할 기회를 제공한다. 일부 정치권과 건보공단은 이를 요양기관에도 책임을 귀속시키는 방향의 개정안이 2001년 16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무산됐다. 의료계는 “의료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간과한다”며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제약사와의 리베이트(뇌물)를 통해 의품을 처방전에 끼워 파는 등 고의적인 위법으로 투망식 처방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자칫 불합리한 보험재정 누수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기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청구된 약제비 때문에 공단이 소송을 진행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보험재정 낭비를 야기할 수 있다”며 “관련법이 서둘러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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