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과 류승룡이 난 자리에 엘사와 심은경이 찾아왔다. 2013년초엔 장발장의 노래와 바보아빠의 딸사랑이 객석을 울리더니, 꼭 1년 후엔 ‘엘사’의 노래와 되찾은 엄마의 청춘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의 성별만 바뀐 ‘닮음꼴’이다. ‘데자뷔’마저 든다. 해외 뮤지컬 영화와 한국 휴먼코미디영화의 쌍끌이 흥행. 겨울극장가의 새로운 공식이 됐다.
1년전을 되돌아보면, 지난해초 아무도 예상못한 뜻밖의 기록적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작품이 ‘레미제라블’이었다. 2012년말에 개봉해 연초까지 관객몰이를 이어갔다. 합창곡인 ‘룩 다운’과 극중 앤 헤서웨이가 부르는 ‘아이 드림드 어 드림’, 휴 잭맨의 ‘후 앰 아이’ 등 영화 속 뮤지컬 넘버가 큰 인기를 얻으며 방송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거리의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레밀리터리블’ 등 패러디물도 넘쳐났다. 흥행의 바통을 이은 것은 한국영화 ‘7번방의 선물’이었다. 지난해 1월 23일 개봉해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영화 사상 흥행 2위까지 성적을 기록했다. ‘7번방의 선물’의 누적관객은 1281만명, ‘레미제라블’의 최종관객수는 591만명이었다.
1년 후 극장가에선 ‘레미제라블’의 인기를 뮤지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이었고, 한국영화 왕좌는 ‘7번방의 선물’에서 ‘수상한 그녀’로 승계됐다.
‘유럽고전동화+브로드웨이뮤지컬+공주영화’라는 디즈니의 전통을 3D로 재현한 ‘겨울왕국’은 11일까지 802만명을 동원하며 ‘아바타’와 ‘아이언맨3’에 이어 국내 개봉작 중 외화 흥행순위 역대 3위에 올랐다.
여러모로 ‘레미제라블’의 흥행과 닮은 점이 많다. 일단 원작이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바탕했고,‘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동화를 원작으로 했다. OST의 인기도 공통적이다. ‘겨울왕국’에서 주인공 엘사가 부르는 노래 ‘렛 잇 고’를 비롯해 ‘러브 이스 언 오픈 도어’ 등 삽입곡이 줄줄이 인기행진을 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각종 패러디물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수상한 그녀’는 영화사에서 ‘7번방의 선물’을 잇는 작품이라고 대놓고 홍보를 했을 정도로 감동과 유머를 표방한 가족영화로서의 면면이 닮았다. 단지 ‘7번방의 선물’이 아빠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라면 ‘수상한 그녀’는 엄마의 헌신에 보내는 ‘헌사’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레미제라블’과 ‘7번방의 선물’의 공감대 원천은 ‘부성애’였다. 이 두 작품을 시작으로 비슷한 시기 높은 시청률 속에 방영됐던 드라마 ‘내 딸 서영이’나 ‘아빠 어디가’로 대표되는 아빠의 육아기를 다룬 예능프로그램 등 지난해엔 ‘아빠의 서사’가 대중문화의 주류가 됐다.
올해에는 비슷한 장르 안에서 서사의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뀌고, 아빠 대신 자매와 엄마가 들어섰다. 이에 따라 관객의 성별 비중도 약간 달라졌다. 인터넷 영화전문예매사이트인 맥스무비에 따르면 ‘레미제라블’은 예매관객의 남녀별 비중이 44대 56으로 나타났고, ‘겨울왕국’은 42대58로 여성이 소폭 늘었다. ‘7번방의 선물’ 역시 여성예매자비율이 57%였으나 ‘수상한 그녀’에선 3%포인트가 늘어난 60%에 달했다. 여성 관객들의 호응이 올해 흥행작 2편에 더 뜨거웠다는 얘기다.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의 동반 흥행이 향후 국내 대중문화에서 ‘여성의 서사’가 강화될 것임을 시사하는 예고편이 될 지 주목된다.
이처럼 주인공의 성별은 바뀌었지만 2년간 비슷한 시기에 흥행한 국내외화를 관통하는 장르와 소재는 국내 영화시장에서 겨울 성수기 의미심장한 ‘흥행 공식’을 보여주고 있다. 뮤지컬 영화에 대한 수요와 가족영화에 대한 기대다.
국내 뮤지컬 공연 시장은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제작 역량이나 편수 또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극장가로 시선을 돌리면 뮤지컬 영화는 ‘사각지대’에 가까왔다. 외국 뮤지컬 영화도 큰 반향을 얻기 힘들었고, 한국영화로는 제작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몇 번의 시도는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레미제라블’의 성공은 국내 극장가에서 뮤지컬영화의 수요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공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관람료로 뮤지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관객들에겐 큰 매력 중 하나가 됐다. 이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힘에 더한 ‘겨울왕국’ 흥행의 한 견인차가 됐다고 하겠다.
반면 ‘7번방의 선물’과 ‘수상한 그녀’의 흥행은 설명절연휴가 낀 겨울 극장가에서 뮤지컬 영화보다 훨씬 폭넓은 세대층, 보다 높은 연령대의 관객층까지 포괄할 수 있는 가족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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