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19세기 중엽까지 밀이나 목화, 담배를 재배하던 농업국가 미국이 짧은 기간 내 선진공업국으로 탈바꿈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혁신을 이끈 성장 동력의 하나가 전기산업이었다. 20세기초 미국은 강호 유럽을 제치고 막 피어오르던 전기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 미국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웨스팅하우스는 1970년대 초반까지 발전 설비분야에서, TV·냉장고·세탁기 등 백색가전에 이르기까지 세계시장을 주물렀다.

전기혁명은 백열전구의 보급에서 촉발됐다. 이 ‘빛의 혁명’은 미국의 위대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한 발명가의 아이디어만으로 미국의 산업지도와 세계경제 속의 위상을 바꿀 수 있었을까? 에디슨 이전에 유럽에는 이미 전기로 빛을 내는 아크등이 있었다. 또 백열전구마저도 에디슨보다 한발 앞서 영국인 조지프 스완이 만들어 특허까지 내놓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에디슨이 유럽을 제치고 산업의 주도권을 잡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월스트리트의 힘이 있었다. 발명가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는 데는 자본시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신성장 산업에는 대규모 자금이 요구된다. 당시 유럽의 발명가들은 소형발전기로 가정에 불 밝히는 것을 꿈꾸었다. 그렇게 되면 전등은 부유층의 호사품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에디슨은 수많은 가정에 전구를 일시에 보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발전소를 짓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만들고 거리마다 전봇대를 세우는 배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다. 에디슨은 자본시장의 유용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처음 시연할 장소로 월스트리트의 실력자 JP모건의 집을 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에디슨과 JP모건이 합작으로 세운 에디슨 전기조명회사는 몇 차례의 분열과 재합병을 거쳐 GE사가 됐다. 비록 에디슨은 투자자들과의 견해 차이로 주식을 팔고 나왔지만 GE는 끊임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투자를 늘려갔다.

그러나 GE의 사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신사업 투자는 리스크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전력혁명 초기, 다양한 발명가들의 아이디어 중 어느 것이 표준이 될지 알 수 없다. 에디슨과 테슬러 사이의 전력 규격전쟁은 매우 유명하다. 에디슨은 안전한 전기로 직류방식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전기를 먼 거리로 송전할 수 없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반면 에디슨 전구회사의 조수로 일하던 테슬러는 장거리 전송이 가능한 교류방식을 제안했다. 에디슨이 교류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자 테슬러는 경쟁사인 웨스팅하우스에 특허권을 넘겼다.

결국 테슬러 측이 승리했다. 웨스팅하우스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나이아가라 발전소 발전 설비 수주에 성공해 직류와 교류 전쟁의 승자가 됐다. 이후 현대의 전기 시스템은 교류방식으로 굳어졌다.

지금 우리경제에는 스마트폰, 자동차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 동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창조경제도 곧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신 성장 동력은 대규모 투자와 높은 리스크를 수반하기 때문에 자본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정 내일의 성장 동력을 찾길 원한다면 자본시장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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