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만해 한용운 거처 ‘중앙학교’ 3·1운동 도화선 ‘선은전 광장’ 일제군경 격돌지
3ㆍ1 독립만세 운동 하면 떠오르는 곳은 단연 ‘탑골공원’이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인근에 있는 ‘서대문형무소’도 일제가 민족지도자를 탄압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안중근의사기념관(남산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효창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3ㆍ1절이나 광복절(8월 15일)이 되면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거나 제대로 보존하지 않아 소외받는 독립운동 유적지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심우장’(성북동)이다. 이곳은 3ㆍ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심우장의 ‘심우’는 소처럼 우직하게 불성을 찾는다는 의미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다면서 북향으로 집을 앉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용운은 이곳에서 첫 번째 장편소설 ‘흑풍’을 집필했다.
계동으로 맨 안쪽에 자리한 중앙고등학교의 숙직실은 3ㆍ1운동의 도화선이 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름은 ‘중앙고등보통학교’. 1919년 1월 일본 도쿄 유학생 송계백이 중앙학교 교사 현상윤과 교장 송진우를 찾아와 유학생들의 거사 계획을 알리고 ‘2ㆍ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한 곳이다. 숙직실 터에는 현재 ‘3ㆍ1운동 책원비’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숙직실은 ‘삼일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돼 있다.
한국은행 본점 앞 광장에서도 독립만세의 함성을 느낄 수 있다. 과거 지명은 ‘선은전 광장’이다. 이곳은 1919년 3월 1일 오후 독립만세를 외치며 조선총독부 쪽으로 향하던 수천명의 시위대가 이를 가로막는 일제 군경과 격돌한 장소다. 당시 시위대는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이날 오후 고종 황제의 빈전이 마련된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친 뒤 소공로를 거쳐 남산 조선총독부를 향해 행진했다. 선은전 광장에 이르자 시위대는 3000명으로 늘었고 일제는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를 긴급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지금은 기념비만 남아 있는 명륜동 ‘중앙학림’은 3ㆍ1운동을 비롯해 불교계 민족운동의 산실이었고, ‘정동제일교회’(당시 정동교회)는 기독교계 민족지도자의 ‘아지트’였다.
최진성 기자/ipen@her 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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