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2일까지 LG아트센터 ‘마타하리’

와일드혼 “옥주현에 영감 받아 창작”

“내 인생과 맞닿은 지점 많아…메소드 연기”

옥주현
뮤지컬 배우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린 언제 죽을 거라 생각하세요? 내일은 무사할까요? 전 그런 마음을 가져요. ‘집을 나섰다 무사히 돌아오는 건 당연하지 않다’고요.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는 걸 무척 많이 봤어요. 세상에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더라고요.”

‘마타하리’의 개막을 이틀 앞두고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등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뮤지컬 배우 옥주현(44)은 이렇게 말했다. 비상시국이었지만, 그는 첫 공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로 관객을 맞았다.

개막 당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그는 “모든 국민들이 흔들릴 때 가장 많이 타격을 받는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

“공연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첫 번째는 메르스, 그 다음은 코로나였어요. (사람이) 떠나는 데엔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고, 세상엔 일어나지 못할 일도 없어요. 그저 매순간 열심히 잘 살아야지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마타하리’는 명실상부 국내 뮤지컬 계에서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톱여배우인 옥주현에게도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에서 특히나 인기가 많은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옥주현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옥주현은 “다시 ‘마타하리’를 연기하기까지 너무나 기다렸다. 롱디(장거리 연애)를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마음”이라고 했다.

“옥주현에게 영감받아 만든, 옥주현을 위한 뮤지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동료들과 주현이 부른 ‘몬테크리스토’ 중 한 넘버를 들었는데,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곤 ‘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주현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를 위한 공연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랭크 와일드혼)

2016년 초연, 네 번째 시즌을 맞은 ‘마타하리’가 태어난 계기다. 와일드혼은 “특정 인물을 위해 공연을 만드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며 “이 작품은 ‘옥주현을 위한 공연’이라 해도 된다”고 말했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에서 이중간첩 혐의로 처형된 무희 마타하리의 실화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와일드혼은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던 중, 마타하리를 떠올렸다”고 했다. 초연 때부터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 옥주현은 마타하리에 대해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시대에 목숨을 건 용기를 낸 사람”이라고 봤다.

옥주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옥주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공교롭게도 ‘마타하리’는 옥주현에게 오해와 논란이 따라올 때마다 막을 올렸다. 그는 “(마타하리는) 저와 닿아 있는 부분이 많은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보다 ‘이런 마음은 어떤 걸까’라는 물음표가 제일 적은 뮤지컬”이라고 했다.

옥주현이 바라보는 마타하리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마타하리의 등장은 센세이션이었다”며 “비욘세 같고, 이효리 같고, 제니 같은 사람이었고, 스파이였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며 오해로 점철된 그의 지난 삶을 언급했다. 뮤지컬 역시 마타하리를 향한 주홍글씨와 오해가 크다는 데에 방점을 두고 그의 삶을 그려간다.

옥주현은 “마타하리는 원치 않았지만 연인을 위해 프랑스 첩보 활동을 돕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며 “나 역시 때론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소중한 것을 어떻게 소중히 다뤄야 하고 감당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이 뮤지컬이 담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의 ‘티켓 파워’, 숱한 오해와 논란…“옥주현이라는 이름은 양날의 검”

무대 위에선 늘 완벽한 모습으로 서지만, 무대 아래의 옥주현은 잦은 오해와 논란이 따라온다. ‘마타하리’ 역시 옥주현이 뮤지컬 배우로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던 지난 2022년에 세 번째 시즌의 막을 올렸다. 당시 뮤지컬 ‘엘리자벳’이 10주년 기념 공연 캐스팅 라인업을 공개하자 옥주현의 인맥 캐스팅 논란이 불거지며 갖가지 뒷말이 터져나왔다. 일명 ‘옥장판’ 사태(“아사리판은 옛말, 지금은 옥장판”)다.

그 때를 떠올리며 그는 “세 번째 시즌에선 메소드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며 “내게 일어나는 일들과 해프닝을 잘 소화할수록 공연하는 사람에게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도 논란은 따라왔다. ‘마타하리’ 속 흡연 장면을 위해 옥주현이 비타민 스틱(훈증기)으로 연습하는 과정이 공개되면서다. 미성년자도 찾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담배를 피우는 듯한 손동작을 노출했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다.

옥주현은 “공연을 보면 ‘저래서 연습했구나’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지만,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작은 것도 커지는 것 같다”며 “비흡연자이기에 흡연 연기는 (내게) 굉장히 큰 숙제였다”고 말했다.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숱한 논란에도 무대 위의 옥주현은 최고의 디바이자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로서의 흔들림이 없다. 그의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볼 때면 관객들은 기꺼이 ‘피켓팅’을 하게 된다.

그는 “여러 일들을 겪으며 내가 조금 더 큰 사람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며 “어떤 일이 생길 때 넘어야 할 큰 산이 또 하나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도리어 안도감이 든다. 그게 매순 간 다시 설 수 있는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지는 것은 분명 제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옥주현이라는 이름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요. 항상 뮤지컬 배우라는 명함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멱살 잡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었다고 저를 위로하는 것 같아요.”

옥주현은 지난 2005년 신시컴퍼니의 ’아이다‘를 통해 무대에 선 이후 뮤지컬 배우로도 어느덧 19년 차가 됐다. 국내 뮤지컬 신(scene)에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명실상부 최고의 티켓 파워를 가진 여배우라 불린다. 그는 첫 뮤지컬 당시를 떠올리며 “뮤지컬 배우로서 어떤 고지가 가겠다는 목표점은 없었다”며 “스스로 무대에 섰을 때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해소하기 위해 달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옥주현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완벽한 무대 준비로 유명하다. 혹독할 정도로 자신을 단련하며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옥주현은 “새내기일 때 선배님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왔다”며 “선배들의 나이가 됐을 때 나의 소리와 기능을 컨트롤 하지 못하면 무척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목소리를 잘 관리해 발전, 보존시키려 노력한 시간은 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은 제2, 제3의 옥주현을 꿈꾸는 후배들을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스스로의 쓰임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최정상을 지켜왔음에도 뮤지컬 배우로서 그는 여전히 먼 곳을 바라본다.

“사실 전 제가 너무나 존경하고 친애하는 조승우 선배처럼 모든 작품을 매진시키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인지 가장 무서운 수식어가 ‘티켓 파워’예요. 다만 저를 선택한 관객들이 있는 만큼 이 사람이 선택한 작품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지갑을 열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좋은 작품을 선택해 한 치의 의심 없이 영혼을 갈아 무대에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