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 韓배제 우려, 한미일체제 동력 상실
한일 셔틀외교 중단, 국교정상화 60주년 희석
정부 “네트워크 풀가동, 필요한 동력 살릴 것”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게 되면서 직무가 정지돼 정상외교는 사실상 공백 상태를 맞게 됐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외교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짧으면 3개월, 길게는 8개월간 이어질 한시적인 체제에서 외교의 한계는 분명하다. 내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가 출범하고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굵직한 외교 일정이 예정된 중요한 시점에서 정상 외교 부재에 따른 외교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8년 전인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황교안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해 이듬해 1월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황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열흘이 지난 2017년 1월30일에서야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전화통화를 했다. 트같은 해 6월에서야 문재인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다.
외교가에서는 현 상황은 8년 전보다 더욱 열악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선 한 권한대행을 비롯한 내각 전체가 12·3 비상계엄으로 수사선상에 올랐고,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군 주요 수뇌부가 구속 또는 구속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지만 우의와 신뢰가 중요한 정상 외교에서 상대국이 카운터파트에 대한 신뢰를 갖고 협의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국제정세 또한 8년 전보다 엄중하다. 신냉전 구도의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국제사회 안보에 심각한 우려를 끼치고 있고, 윤석열 정부는 파병 사실을 미국보다 먼저 공개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주도해 왔다. 그랬던 한국이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정세 판단과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검찰은 비상계엄에 중요한 가담자로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북한 오물풍선을 ‘원점타격’하라고 지시했다는 정황과 관련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만난 자신감으로 ‘강한 리더십’을 과시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일대사를 북한 등 특별임무를 위한 대통령 사절에 발탁하면서 북미 대화 재개에 시동을 걸고 있다. 반면 대선후보 시절부터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을 언급하며 취임 후 대북 강경정책을 시행해온 윤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신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수립되기 전 우리의 입장을 충분하게 설득해 반영되도록 해야 하는 시기인데, 트럼프 당선인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양국 간 대북 인식의 간극을 메우고 북미 대화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확보해야 하는 중대한 기점에서 한국은 정상 외교의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김 위원장이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과의 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될 경우 한 권한대행이 남한의 입장을 개진할 외교적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 직후 발표한 담화에서도 언급할 정도로 최대 외교 성과로 자평하는 한미일 3국 협력 체제의 동력도 상실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의 주역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교체되면서 윤 대통령이 신임 정상들과 함께 3국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미일 정상회의의 제도화를 위해 설치된 한미일 협력사무국의 초대 사무국장을 한국이 맡기로 한 것도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미일 정상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마저 직무 정지에 놓이면서 이 동력마저 상실했다. 소·다자체제보다 양자 관계를 중시하는 트럼프 당선인 집권 이후 한미일 3국 체제가 유지될지 미지수다.
바이든 행정부와 다른 정책이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경제안보 대응까지 한미 양자 문제에서 한 권한대행 체제가 국가적 이익을 확보할 강한 외교를 펼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대일 외교에도 적용되는 문제다. 한미일 3국 협력 체제 아래에서 셔틀외교 복원을 통해 관계 회복을 꾀한 한일 외교는 정상 간 친분으로 유지돼 왔다. 최근 사도광산 추도식과 관련해 과거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에서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며 양국 관계가 중대 기로에 서 있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취임 후 첫 양자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이를 취소했다. 당분간 한일 외교도 중단될 위기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5일 취재진과 만나 “트럼프 당선인 측과 구축해 놓은 네트워크가 가동되는 데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후 지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정부, 기업인들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풀가동해 필요한 동력을 다시 만들고 정책을 조율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