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한 사람은 유호성뿐이었다. 그는 애인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에게 혹독한 꾸중을 들은 후에 일본으로 보내졌다. 유민 회장은 그를 감시하기 위해 무술 유단자들로 구성된 감시단을 함께 파견했으므로 그는 날개 부러진 채 병 속에 갇힌 새와 다름없었다. “도련님, 오늘은 해가 저물기 전까지 20㎞ 코스를 답사하셔야 합니다.” 세 명으로 구성된 감시단의 우두머리인 유도 4단이 이렇게 첫 지시를 내렸다. 이제 막 레이싱 스쿨에 입학원서를 제출한 상태라 아직 합격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사전교육이 시작된 셈이었다. “코스 답사라뇨? 나보고 20㎞를 걸으란 말예요?” “그렇습니다. 레이싱 스쿨의 교육방식 그대로 미리 예습을 시키라고 아버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미치겠군. 걷는 것이 레이싱 수업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요?” “상관있습니다. 자동차로 달려야 할 코스를 미리 걸어가면서 노면이 파인 곳이나 미세한 돌출부분, 혹은 경사를 파악하는 교육과정입니다.” “교육과정? 어이구, 돌겠군, 돌겠어.” 말은 이렇게 했으나 거역할 수는 없었다. 유도 4단의 미간이 일그러졌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다가 업어치기라도 당하게 되면 객지에서 뼈도 못 추릴 판이었다. 그러니… “알았어요. 걷지요. 걸으면 되잖아요. 20㎞만 걸으면 예습은 끝나는 거지요?” 유호성은 운동화 끈을 조이며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특공무술 3단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24시간 내내 유호성의 곁을 지키는 수행감시원이었다. “입학 사흘 전까지 날마다 20㎞씩 답사교육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 후에 나머지 이틀은 스쿠터를 타고 코스를 따라 도는 겁니다. 마지막 하루 전에는 자동차를 타고 돌 예정입니다. 자동차보다는 스쿠터를 타는 것이 코스 공략에 좋습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걷는 거지요. 그래야 빈틈없이 코스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호성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입학까지는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으니 향후 27일 동안은 매일같이 20㎞를 걸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수행감시원이 무시무시한 특공무술 3단이라니 빼도 박도 못하고 고행 길로 접어들어야만 할 판이었다. 원래 레이싱 스쿨의 교육과정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 드라이빙 테크닉의 기본부터 찬찬히 수순을 밟아 나가는 것인데, 운전 자세를 익히는 드라이빙 포지션부터 시작해서 스티어링 웍, 시프트 웍, 힐앤 토, 브레이킹, 라인 타기, 그리고 AT차로 서킷을 주행하는 순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라인 타기부터 이른바 고급 과정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할까? 아웃 인 아웃, 연석 타기, 긴 직선구간 앞에서 코너 돌기, 클리핑 포인트 잡기, 슬로우인 패스트아웃, 액셀을 열어놓은 그립 잡기 등등 드라이버로서 꼭 익혀야만 할 기술을 차근차근 배우도록 규정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유호성은 마구잡이로 운전을 배웠기 때문에 이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라면집 개도 3년이면 면발의 파마가 풀어지지 않도록 라면을 끓인다고, 비록 마구잡이 운전 솜씨일망정 운전대만 잡으면 산이며 들을 훨훨 날곤 했다. 그러니… “어째서 공자님한테 책 읽는 법부터 가르치냐고요?” 아침 일찍부터 걷기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투덜거릴 수밖에. 그러나 수행감시원은, “회장님 명령입니다.” 딱 한마디로 대답할 뿐이었다. 유호성이 게으름을 피우면 그의 눈에서 안광이 퍼렇게 이글거렸으므로 그는 죽자고 앞을 향해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레이싱 교육과정과는 상관없는 훈련임에 분명했다. 어쩌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주색잡기에 연연했던 탓을 들어 본때를 보이자는 아버님의 못된 심보일 것이 분명했다. 제기럴!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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